불구하고 통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단 상태에서도 꾸준히 인적, 물적 교류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독 간 통합은 적지 않은 진통과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특히 동·서독 경제 통합의 과정은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가져왔다. 이 과정의 출발인 1:1화폐 통합은 서독인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게 했으며 동독인들은 통일 독일에서의 생활수준이 결정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통일독일은 정치경제적 통합, 즉 외적 통합보다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통합 등 내적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스탤지어(Ostalgia) 현상이 심화되고 확산되는 독일 현실은 통일이 제도나 체제의 문제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인간과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동독 정권하에서 교조적이고 타율적인 생활방식에 길들여진 동독 주민들이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와 시장 경제 질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겪는 심리적 갈등의 문제이다. 재산권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기감, 실직, 서독 국민들에 비하여 2등 국민이라는 열등감, 사고방식의 괴리 등이 나타나고 있다. 통일 후 동·서독은 정치적, 제도적 통합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진정한 내적 통합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가 지속되고 확대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그 동안의 통합 노력이 무색해지고 있다. 즉, 통일은 제도의 통합이기에 앞서 인간의 융합으로, 통일의 과정은 멀고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두 사회의 고유한 가치들을 상호 인정하고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서독사람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지난 40년간 동독에서의 삶을 무의미하거나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동독체제에 대해 많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정신적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우리는 독일 통일 논의의 깊이와 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을 단순히 분단된 민족국가의 복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사회와 바람직한 세상을 건설하는 기회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통일의 찬반이 아니라, 어떤 통일을 이루어야하는지에 모아져야 하므로 무조건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급한 주장이다. 그것은 주장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모순을 은폐 할 위험성이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원래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 개념을 절대시할 것이 아니라, 민족개념의 현실적 의미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민족 개념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적 현실과, 경쟁력을 갖춘 나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국제정치적 환경은 어느 때보다도 민족 개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근대 초기 서구의 민족통일운동과 자본주의 발전의 관계가 보여주듯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남북한의 통일은 자칫 자본의 활동공간을 확장시키고, 그 결과 심화된 사회적 불평등과 문화적 갈등을 한반도 전체로 확산시킬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 문제는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키는 가운데 신뢰를 회복하는 공존의 논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시 말해,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제도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가운데 궁극적인 평화 통일의 기반을 쌓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한반도의 남북한 통일을 연구하거나 실질적으로 남북 통일을 위한 노력을 실행에 옮길 때, 동서독의 통일 경험을 주의 깊게 분석하여 그로부터 다양한 교훈을 얻어내려고 해 왔다. 다음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해 보았다. 독일에서 교훈과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독일의 통합 이후 동서독간 경제적 격차가 20년이 지나서도 수렴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로 남아 있으며 통일이 오히려 동서독 공히 성장의 장애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노동개혁의 결과로 독일의 경제가 활력을 보이고 있지만 동서독간의 완전한 통합에는 앞으로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통일 한국의 경우도 통합과정에 상당한 진통과 함께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이 확실하고 북한의 요인이 남북한 전체 성장에 상당한 정도로 장애가 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독일 통합의 과정에서 서독이 주도하고 동독은 그 역할이 거의 없었다. 러시아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경우 통제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과정이 선진국의 자문과 지원에 의존하여 진행되어 왔던 것과 비교하여 독일 통합과정은 독일 스스로 주도하여 왔다는 점에서 특이한 양상을 보여 왔다. 남북한의 상황 역시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면 동유럽 국가보다는 동서독의 모델과 유사하게 한국 주도로 통합 과정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독일의 모델이 유용하다. 셋째, 독일은 통일 당시의 경제상황이나 주변국과의 협력관계 측면에서 현재의 남북한 상황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던 반면 우리가 겪게 될 통합과정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독일이 겪은 구조적인 문제와 정책의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그 어려움을 경감할 필요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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