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번의 중국 5대사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28회 29회 30회 한문 및 한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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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채동번의 중국 5대사역사소설 오대사통속연의 28회 29회 30회 한문 및 한글번역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이십팔회 거란주책립진고조 술율후소매조대왕
오대사통속연의 28회 거란 군주는 진나라 고조를 책립하고 술률태후는 웃으며 조대왕을 욕하다
제이십구회 일거성회도두얼보 삼수반명의차삭평
오대사통속연의 29회 한 횃불로 재를 만들어 마침내 업보를 받다. 3장수는 어명에 반란해 차례대로 평정당하다
제삼십회 양광원탐리서인 왕연희승란절국
오대사통속연의 30회 양광원이 이익을 탐해 타인을 물고 왕연희는 난리를 틈타 나라를 훔치다

본문내용

을 절도사로 승격하게 해 달라고 했다.
曦以威武軍是福州定名, 不應復稱, 但稱建州爲鎭安軍, 授延政節度使, 加封富沙王。
희이위무군시복주정명 불응부칭 단칭건주위진안군 수연정절도사 가봉부사왕
왕희는 위무군은 복주의 정해진 명칭이니 다시 호칭할 수 없다고 하며 단지 건주를 진안군으로 승격하고 왕연정을 절도사로 제수하고 부사왕으로 더 봉했다.
延政復改鎭安爲鎭武, 不從曦議。
연정부개진안위진무 부종희의
왕연정은 다시 진안을 진무로 개명하고 왕희 논의를 따르지 않았다.
曦因是復忌延政。
희인시부기연정
왕희는 이로써 다시 왕연정을 시기했다.
汀州刺史延喜, 系是曦弟, 曦疑他與延政通謀, 發兵捕歸。
정주자사연희 계시희제 희의타여연정통모 발병포귀
정주자사인 왕연희는 왕희의 아우로 왕희는 그가 왕연정과 음모를 통한다고 의심해 병사를 내어 체포해 돌아오게 했다.
又聞延政與繼業書, 有勾通意, 因卽召繼業還, 賜死郊外。
우문연정여계업서 유구통의 인즉소계업환민 사사교외
또 왕연정과 왕계업 서신이 내통한 뜻을 듣고 왕계업을 민으로 불러서 교외에서 사약을 내렸다.
殺繼業子于泉州, 別授繼嚴爲刺史。
병살계업자우천주 별수계엄위자사
천주에서 계업 아들 왕우를 죽이고 따로 왕계엄을 자사에 제수했다.
後來復疑及繼嚴, 罷歸死, 專用子亞澄同平章事, 掌判六軍諸衛, 自稱爲大皇。
후래부의급계엄 파귀짐사 전용자아징동평장사 장판육군제위 자칭위대민황
(짐새 짐{술에 빠질 탐}; -총11획; dan,zhen)의 원문은 (짐새 짐; -총15획; zhen)이다
뒤에 왕계엄까지 다시 의심해 돌아오게 해 짐독으로 죽이고 오로지 아들 왕아징을 동평장사 겸 장판육군제위로 등용하고 자칭 대민 황제라고 했다.
已而僭號爲帝, 授子亞澄爲威武節度使, 兼中書令, 封長樂王。
이이참호위제 수자아징위위무절도사 겸중서령 봉장락왕
이어 참람되게 황제를 호칭해 아들 왕아징을 위무절도사 겸 중서령으로 제수하고 장락왕에 봉했다.
尋且加封王。
심차가봉민왕
이어 민왕에 봉했다.
王延政亦自稱兵馬大元帥, 與曦失和, 再行攻擊, 兩下互有勝負。
왕연정역자칭병마대원수 여희실화 재행공격 양하호유승부
왕연정도 또 자칭 병마대원수라고 하며 왕희와 화친을 상실해 다시 공격을 시행해 양쪽에 승부가 있었다.
至晉天福八年, 也公然稱帝。
지진천복팔년 야공연칭제
진나라 천복 8년(943) 에 이르러서 공연히 황제라고 호칭했다.
國號殷, 改元天德, 大一個國, 生出了兩個皇帝來。
국호은 개원천덕 야대일개민국 생출료양개황제래
天德 (민) 943~944
大 [ruoda] 이렇게 크다. 그렇게 크다
왕연정은 국호를 은이라고 하며 천덕으로 개원해 이렇게 큰 민나라가 두명 황제를 내었다.
(佛兩頭蛇。)
방불양두사
두 머리 뱀과 비슷했다.
小子有詩歎道:牆構肇兵爭, 寧識君臣與弟兄!
소자유시탄도 혁장구흔조병쟁 녕식군신여제형
牆 집 안 담장에서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형제(兄弟) 사이의 다툼을 이르는 말
構:불화(不和)의 씨를 만듦
내가 시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형제간 틈이 생겨 전쟁이 시작되어 어찌 군신과 형제를 알겠는가?
分守一隅蝸角似, 如何同氣不同情!
분수일우와각사 여하동기부동정
한 모퉁이를 나눠 지켜 달팽이 뿔처럼 작으니 어찌 동기간에 같은 정이 없는가?
亂未靖, 晉廷亦變故多端, 俟小子下回再表。
민란미정 진정역변고다단 사소자하회재표
민땅 반란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진나라 조정에서 또 변고가 복잡다단하니 내가 아래 31회에서 다시 표시하길 기다려보라.  
楊光遠爲後唐部將, 從張敬達出討晉陽, 戰敗以後, 遽殺敬達出降, 其心跡之不足恃, 已可槪見。
양광원위후당부장 종장경달출토진양 전패이후 거살경달출항 기심적지부족시 이가개견
양광원은 후당의 부장이 되어 장경달을 따라 진양 토벌을 나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급히 장경달을 죽이고 항복을 나와 마음자취를 믿기 부족함은 이미 대개 보였다.
及魏州一役, 僥幸成功, 彼卽擁兵自恣, 要挾多端。
급위주일역 요행성공 피즉옹병자자 요협다단
위주에서 한 전쟁은 요행히 성공하니 그는 병사를 끼고 스스로 방자해 복잡함을 끼었다.
晉主曲爲優容, 愈足養成跋扈。
진주곡위우용 유족양성발호
진나라 군주는 잘못 용서해 더욱 족히 발호를 양성했다.
範延光乞休歸里, 載寶甚多, 雖象齒焚身, 咎由自取, 然光遠安得而殺之, 亦安得而奪之!
범연광걸휴귀리 재보심다 수상치분신 구유자취 연광원안득이살지 역안득이탈지
象焚身 [xiang ch fen shn] ①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살신(殺身)의 화(禍)를 당하다 ② 재물이 많음으로 인해서 화(禍)를 입다
범연광이 휴가로 고향에 돌아감을 애걸해 재보가 매우 많아 비록 상아 때문에 코끼리가 불타죽듯이 스스로 재앙을 만들어 양광원은 편하게 죽이니 어찌 편안히 빼앗는가?
身爲人臣, 目無法紀, 彼豈尙肯爲晉室臣乎?
신위인신 목무법기 피기상긍위진실신호
目无法 [mu wu f ji] 法律이나 규율(規律) 따위를 안중에 두지 않다
몸이 신하가 되어 눈에 법률이 없으니 그는 어찌 아직 진나라 황실 신하겠는가?
祖王審知, 雖起自盜賊, 而好禮下士, 有長者風。
민조왕심지 수기자도적 이호례하사 유장자풍
민왕 조상인 왕심지는 비록 도적에서 시작하나 예의를 좋아하고 선비에게 낮추어 장자 기풍이 있었다.
乃子孫不賢, 淫無度, 後有昶, 昶後有曦。
내자손불현 음흉무도 린후유창 창후유희
(굳셀 린{인}; -총20획; lin,lin)
자손은 현명하지 못하고 음란하고 주정함이 한도가 없어 왕린 뒤에 왕창이 있고 왕창 뒤에 왕희가 있었다.
殺相尋, 禍亂無已。
찬살상심 화란무이
마음대로 이어서 재앙혼란이 그치지 않았다.
要之五季之世,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一晦盲否塞之天下也, 胥中國而夷狄之, 禽獸之, 可悲也夫!
요지오계지세 군불군 신불신 부불부 자부자 일회맹비색지천하야 서중국이이적지 금수지 가비야부
晦盲否塞: 회는 달이 없는 그믐이고 맹은 눈이 먼 봉사이며 비는 숨이 막히는 것이고 색은 냇물이 막힘, 사람의 양심과 학문이 어두어지고 행해지지 않음
胥(서로, 함께 서; -총9획; xu)
5대 마지막 세대를 요약하면 군주는 군주답지 않고 신하는 신하답지 않고, 부친은 아버지 답지 않고 자식은 아들답지 않아 한번 어둡고 꽉막힌 천하로 중국과 함께 오랑캐가 따라 금수다운 행동을 하니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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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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