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 모건 스펄록 슈퍼 사이즈 미 무엇을 위한 자학 행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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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큐멘터리 - 모건 스펄록 슈퍼 사이즈 미 무엇을 위한 자학 행위였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작품 개요
2. <슈퍼 사이즈 미> 선정 이유
3. 분할표
4. 시퀀스 요약 및 분석
5. 장점은 무엇인가?
6. 다큐멘터리 분석
7. 결론 분석
8. 기타 / 자유 분석

본문내용

그래서 <슈퍼 사이즈 미>는 다른 다큐멘터리 작품처럼 결론만을 기대하는 부류와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패스트푸드는 몸에 나쁘고, 그것만 계속 먹다간 몸이 망가질 거란 건 자명하지 않은가. 그래서 감독은 다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미 자명한 결과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게 침투해 있는지, 낱낱이 살펴보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해당 작품은 오로지 이미지만을 보여주기보다는, 끊임없이 자료 화면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내레이션을 도입한다. 마치 정공법으로, 혹은 직설적으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려는 것처럼 말이다.
(2) 형식 측면: 양식만을 따지면 설명 다큐멘터리와 참여 다큐멘터리의 혼합으로 보인다. 일단 전자는 자명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비만 소녀의 맥도날드 소송 사건이 아니었으면, 아마 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실제로 있었던 현실의 쟁점을 직접적으로 다루었고, 그곳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또한 작품 내내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관객이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지만, 그 대신 영화가 가끔 주관적인 이념에 사로잡히는 부분도 보인다. 이를 테면 인종 차별적인 면모(흑인들과의 인터뷰), 정치적 의견(조지 부시 언급) 등등. 영화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가끔 이러한 요소 때문에 몰입감을 해친다. 한 마디로 ‘권위적 해설’이라는, 전형적인 실험 다큐멘터리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설명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참여 다큐멘터리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내레이션만큼이나 당연하게도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의 인터뷰가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일방적은 개개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들을 수렴해서 입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관객의 이해, 혹은 주장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간간히 애니메이션이나 자료 화면을 사용하기도 한다. 즉,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실험을 위한 영화이면서, 타인과도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험을 하는 와중에서도, 주인공은 간간히 건강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또는 직접 학교의 급식 시스템에 개입을 하거나, 맥도날드 업체와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하는 등, 최대한 외부 인원들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화면들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몇몇은 기존에 있던 촬영본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직접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최대한 조잡함을 없애고, 간단명료하고 익살스러운 느낌으로 해당 쟁점에 접근한 것이다. 굳이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직관적이고 단순한 시각적 요소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7. 결론 분석
이 영화의 감독,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알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몸에 나쁘다.’ ‘패스트푸드만 삼시세끼 한 달 동안 먹다간 몸이 성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명한 끝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영화는 자학을 계속한다. 왜일까? 이 영화는 결론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론이 닥치고 난 뒤의 일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자,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어서 몸이 나빠졌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떡할 텐가?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결국 영화 말미에 나오는 감독의 한 마디가 이 영화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먼저 죽을 건가요? 아니면 그 음식을 먼저 떠나보낼 것인가요?” 실제로 이 영화는 패스트푸드의 위험을 경고하고 싶은 게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탐닉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삶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대답보다는, 질문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대답해야 될 사람은 감독이나 작품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있지만 내가 그 정답을 실천하고 있는지 질문한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8. 기타 / 자유 분석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분석에 따르자면,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자학적 행위들이 옳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공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좋은 음식이라도, 한 달 내내 삼시세끼 그것만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건 당연하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이다. 물론 나도 감독이 이러한 점은 제대로 인식하고 결론을 도출해내려 했다는 건 알고 있다. 대략, ‘일부’의 미국인들이 실제로 저런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이런 실험을 했다는 걸로 기억한다.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게 겨우 ‘일부’에 국한되니 나로썬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오로지 일부만을 대변하는 이러한 극단적인 실험이, 나로썬 100% 온전히 이해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 햄버거만 먹겠다고 포스터에 나와 있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충분히, 전부는 아닐지라도 과반수이상이 저런 생활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 모건 스펄록이 보여준 극단적인 실험은, 오로지 과반도 되지 못하는 ‘일부’를 대변하는 실험에 불과하다. 헌신에 가까운 자학은 분명 인상적이었지만, 다 보고 곱씹어보면 그것은 서커스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편성과 동떨어진 극단적인 실험은 그냥 무의미하다. 그 극단이 ‘일부’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쉽게 납득했을 테지만. 그렇기에 내가 보기엔, 모건 스펄록이 자행한 자학은 20% 정도만 의미가 있고, 80%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알려줬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누군가 다 아는 사실을 위해 이런 극단적인 실험을 펼친다.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어쩌면 약간의 프로파간다적 성향이 엿보여 교묘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영화 말미에 던지는 최후의 한 마디도, 결국엔 ‘일부’에 국한되는 이야기지,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맥도날드를 방문하는 22%가 아닌 78%의 사람들에겐 별반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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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30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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