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신조과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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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니케아 신조의 배경 - 아리우스 논쟁의 발발과 니케아 회의
1.1. 아리우스 논쟁의 발단
1.1.1. 속사도에서 오리겐까지
1.1.2. 아리우스 논쟁의 발발과 전개
1.2. 니케아 회의

2. 니케아 신조 및 분석
2.1. 니케아 신조
2.2. 니케아 신조 분석

3.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배경
3.1. 아리우스파와 반아리우스파의 응전과 이들의 우세 시기인
콘스탄틴 황제의 사망시까지; A.D. 325-361.
3.2. 정통 기독교의 최종 승리와 니케아 신경이 완성된
콘스탄티노플 회의시까지; A.D. 361-381.
3.3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4. 니케아 신조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비교

결론

본문내용

란 말씀하신 이가 성령이라는 뜻으로서, 구약에 항속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섯째, 성령 발출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는 성부로부터 발출했다는 점만을 밝히고 성자와의 관계는 침묵하였으므로 후대 동서방 교회 간에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아들로부터"라는 의미를 가진 "필리오케"는 589년 스페인의 톨레도(Toledo) 종교 회의 이후로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삽입되었는데, 교황 니콜라스 1세(858년) 때부터 전 서방교회에서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결국 개신교에서도 인정되는 교리가 되었다.
일곱째,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성경대로"라는 귀절을 삽입함으로써 진리의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전통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더욱 높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Schaff, Ibid., p. 670. 피영민, 상게서, 161쪽.
아울러 그 내용에 있어서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들의 "신앙의 규율"의 내용을 니케아 신조보다 더욱 많이 반영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아리우스파에 대한 저주문은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와서 삭제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또한 "유일하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문구 속에서 교회에 대한 신앙 고백을 첨가시켰으며, 구원의 길로서 "죄 사함을 통한 세례"를, 그리고 내세와 과련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을 추가하였다.
Schaff, Ibid., p. 670.
이로써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여러 이단들을 정죄하였다.
서철원, 상게서, 160-161쪽. Schaff, Ibid., p. 640.
과격한 아리우스파로서 성부와 성자의 "상이본질"(Hetero-Ousios) 혹은 "부동"(Anomoios)을 주장한 유독시우스(Eudoxius)와 아에티우스(Aetius), 유노미우스(Eunomius)를 정죄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위격을 부인하고 "성령은 우주 전체에 분사된 신적 에너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성령의 신성을 부인한 마세도니우스(Macedonius)와 성령훼방론자들(Pneumatomachians)을 정죄하였다. 또한 순수 양태론을 가르친 사베리우스(Sabellius)파를 정죄하였으며, 그리고 로고스와 성부의 동일본질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사모사타의 바울처럼 역동적 단일신론에 빠져 로고스를 성부의 계시방식으로 본 마르셀루스(Marcellus of Ancyra)와 포티누스(Potinus)를 정죄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무죄성을 옹호하려다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불구 인성으로 만들어 인간 구속에 합당치 못한 존재가 되게 한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of Laodicea)를 정죄하였다.
니케아 신조와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공존하다가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로는 점차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니케아 신조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신조라는 이름보다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이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박용규, 상게서, 363쪽의 각주 53을 보라.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아리우스 논쟁에서 비롯된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는 니케아 회의에서 '성부와 성자의 동이본질'로 일단락 지어졌다가, 니케아 이후에 계속된 논쟁에서 성령의 신성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삼위일체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이런 면에서 정통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회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본질에 있어서의 일치와 위격에 있어서의 명확한 구별이 정통 교리로 선언되면서, 상이본질론, 유사본질론, 양태론, 성령훼방론, 종속설 등 모든 이단들이 정죄되었다. 아을러 성자의 불완전한 인성을 주장한 아폴리나리우스도 극복하였다.
그러나 본질의 일치성이 숫자적 일치성이냐 총칭적인 일치성이냐 하는 문제와, 성자의 출생과 성령의 발출이 완성된 것이냐 아니면 미완성된 것이냐 하는 문제, 그리고 성령의 발출이 성부로부터 발출되었다고 선언했는데, 성자로부터의 발출을 내포한 것이냐 배제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후대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피영민, 상게서, 164-165쪽.
그러나 "삼위일체를 설명하라. 그러면 네 정신을 잃을 것이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라. 그러면 네 영혼을 잃을 것이다"
Ibid., 165쪽에서 인용.
라는 격언이 시사한 바대로, 신비의 영역을 인간의 제한된 지성으로 온전히 파헤치려는 교만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니케아 신조와 비교할 때 성령론, 교회론, 구원론, 내세론의 면에서 크게 진보했으며, 성경의 권위를 크게 인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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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정수영, 「새 교회사 I」. 서울:규장문화사. 1992.
박용규, 「초대교회사」. 서울:총신대학출판부, 1994.
차영배, 「개혁교의학: 삼위일체론」. 서울:총신대학출판부, 1992.
피영민,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삼위일체론," 제9차 기독교학술원 학술 심포지움 미간행 자
료집(1994).
서철원, 교리사 강의안 (미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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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5.02
  • 저작시기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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