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락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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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시작하는 글: 기독교교육의 최근 연구유형

II.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theopraxis approach)

III. 기독교교육의 내용선정 준거

IV. 기독교교육의 삼차원적 내용선정

V. 마치는 글

본문내용

교회의 성례전을 소홀히 취급하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룸이 "모든 성례전 중의 성례전은 성만찬(Eucharist)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성례전에 대한 교육과 참여, 특히 성만찬에의 참여는 하나님과의 신비한 연합(mystious union)을 경험하는 기독교 영성적 프락시스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케리그마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scripture), 그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신학(theology), 그리고 그 말씀의 선포(preaching)로 구성되는 케리그마는 교회에서 실천되는 중요한 영성적 프락시스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할 것은 성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관한 해석학적 관점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선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컨대 마태복음의 달란트비유(마 25:14-30)는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다니엘 파테(Daniel Patte)의 해석에 의하면, 심판을 당하게 되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궁극적인 문제는 그가 "그의 주인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 아니라, 모질고 잔인한 분으로 오해함"이었던 것이다. 진리의 바른 이해와 참된 삶은 이렇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고 선포하며, 또 성찰하는 작업으로서의 케리그마는 신앙공동체의 중요한 영성적 프락시스가 되는 것이다. 넷째는 디아코니아이다. 봉사로서의 디아코니아는 교회가 이웃의 섬김행위를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회적 불의에 대한 저항 및 비판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돌봄을 통해 신앙공동체는 영성적 프락시스를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노딩(Nell Noddings)과 길리건(Carol Gilligan)에 의해 여성의 관점으로부터 돌봄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이래로 다양한 돌봄의 대상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여성 뿐만 아니라 어린이, 장애자,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돌봄의 필요성이 점차 증가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과정은 이러한 돌봄의 대상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영성적 프락시스를 실천하고 그 프락시스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는 증언이다. 여기서 "증언"은 그룸이 주장하는 마르투리아(Marturia)로써, 파즈미노가 말하는 프로페테이아(Profeteia)와 같은 맥락의 의미이지만, 후자가 일종의 개인적인 자신의 신앙고백적 차원을 강조한다면, 전자는 보다 공적인 증언의 차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마르투리아는 기독교신앙을 삶과 모범을 통하여 실천하는 것으로써, 심지어 죽음이 필요하다면 순교를 각오하는 삶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문상희가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초대교회에서 "증인"인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된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증거에는 희생이 요구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러한 순교자적 증언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기독교인과 교회의 삶은 영성적 프락시스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③ 세 번째 영성적 프락시스의 교육내용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실천되는 영성이다. 이것은 앞에서 진술한 해방적 영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써, 기독교의 영성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처럼 이 세상을 부정하고 내세만을 지향하는 영성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체적인 통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구테에레즈가 주장했던 것처럼, "해방"은 인간을 파괴시키는 "불의한 사회적 구조로부터 해방", "운명의 노예로부터 해방", 그리고 "개인적인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때, 해방은 이러한 세가지 해방 모두를 지향하는 것이며, "해방의 영성"은 이러한 해방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도(discipleship)를 의미한다. 그래서 구티에레즈는 해방의 영성을 "사람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과 연대하는 것(solidarity)"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해방의 영성은 이웃에 대한 회심이고, 그들과의 지속적인 연대감과 사랑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에 의한 교육내용은 바로 이웃과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민중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민중과의 연대감, 여성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차별받는 여성과의 연대감, 그리고 선교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차별받는 인종과의 연대감, 그리고 더 나아가 생태계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고통당하는 자연과의 연대감 등을 사회적인 영성적 프락시스 내용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V. 마치는 글
신중심적 프락시스(theorpaxis)란 하나님의 우선적 프락시스에 신앙으로 응답하는 활동이라고 할 때, 기독교교육의 활동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프락시스에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선정하고 조직하는 일체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에 의한 기독교교육의 교육내용은 신중심적 프락시스의 준거에 따라 그 내용을 의사소통적 프락시스, 해방적 프락시스, 그리고 영성적 프락시스의 내용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의 프락시스에 가장 적절하게 응답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언해왔다. 다시말해 예수께서는 히브리성서를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이해를 제시한 스승이었고(마5:21-48),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우선적 선택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로마 정부를 향하여 해방적 프락시스를 실천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삶의 지도자였으며(막15:1-47), 동시에 예수께서는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영성적 프락시스의 실천자(눅5:16; 요 17:1-26)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가 실천해야할 완전한 프락시스의 원형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에 의한 기독교 교육과정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그의 프락시스를 통해 하나님의 프락시스에 신앙으로 응답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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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2.11.03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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