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부활의 신화( 루거스너와 IBM 부활의 신화)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I. IBM의 부활을 선포하다.

II. 루 거스너와 IBM의 운명적 만남

III. 누가 우리를 공룡이라 부르는가

IV. 루 거스너의 사람들

V. `루 거스너의 IBM`

본문내용

를 단행하였다. 특히 컴퓨터 제조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각종 칩의 공급가격을 줄이기 위해 스티븐슨은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거의 협박하다시피 하며 공급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였다.
시장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 큰 변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스티븐슨은 샘 팔미사노를 PC 사업부문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PC 사업부문의 책임자가 된 팔미사노는 자신이 보고들은 것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PC 부문이 IBM내에서 가장 복잡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쓸데없이 지출되는 경비도 많았던 것이다.
팔미사노가 PC 사업부문을 맡은 지 1년 만에 시장 점유율이 3%나 올라갔지만 그는 시장 점유율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더구나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시장 점유율만 올리고자 하는 시도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는 제조업이 성공하려면 재고 자산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생각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팔미사노의 지휘 아래 IBM PC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을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출시했고, '주문형 PC'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문형 PC는 다른 경쟁사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IBM에서는 최초의 시도였던 것이다. 이것은 IBM PC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PC 사업부문의 실적이 좋아지자 PC 부문 임직원들에게는 기대 이상의 보너스가 지급되었다.
V. 루 거스너의 IBM
멈추지 않는 도전
거스너가 IBM의 CEO가 된 이후 IBM이 자사 주를 매입하는 데 사용한 돈은 무려 250억 달러에 달했다. 이에 대해 몇몇 투자분석가들은 거스너가 장기적인 차원에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주가 상승만을 노리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IBM의 이사진은 거스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고, 사실 거스너에게도 그런 이사진의 평가야말로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 또 그가 항상 강조하였던 것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였던 만큼 자신의 원칙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기도 했다. 1993년 330억 달러였던 IBM의 시가 총액은 1998년 말에 1,690억 달러로 5배 이상 증가해 있었다.
1998년 IBM은 817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매출액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4%나 증가한 수치였다. 하지만 그 실상을 뜯어보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체 매출액의 2/3에 해당하는 사업 부문들이 제자리 매출액 또는 오히려 매출 감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모든 하드웨어 사업의 매출이 감소했으며, 가장 핵심적인 하드웨어의 세 개 사업부문은 4.4%∼10.8%의 매출액 감소를 기록했다.
이와는 달리 소프트웨어 사업의 경우 75%라는 높은 마진율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IBM의 수익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업부문은 OEM 사업부문이었다. OEM 사업부문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나 컴퓨터 칩 등을 만들어 다른 컴퓨터 제조회사에 반제품 형태로 판매하거나 다른 기업에 IBM의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그 기술 사용료를 받는 등의 사업이었는데, 이로부터 발생한 이익은 거스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기업들을 상대로 시스템 통합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8년의 주주총회에서 거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제 기억으로 아웃소싱 사업을 가장 먼저 행한 회사가 바로 IBM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첨단 기술 산업이 복잡해져 가는 상황에서는 컴퓨터 시스템 관련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앞으로도 우리 IBM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IBM은 PC 사업으로 인해 벌써 몇 년째 큰 손실을 보고 있었다. 만일 잭 웰치가 IBM의 경영을 맡았다면 PC 사업부문은 벌써 다른 기업에 팔렸을 것이다. 하지만 거스너는 PC 사업부문이 IBM의 다른 사업부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관성을 꿰뚫어 보았다. 비록 PC 사업부문 자체로는 이익을 내지 못했지만 PC 외장에 붙어있는 IBM의 로고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기업광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거스너는 IBM의 어떤 역대 CEO들보다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를 현명하게 처리했다. 거스너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연구활동에 대한 지원은 모두 중단시켰다. 거스너가 삭감한 연구개발비는 연간 10억 달러에 달했지만, 1993년부터 1998년까지 IBM의 특허 출원 건수는 전혀 줄지 않아 세계 최대의 특허 출원 기업이라는 위상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연구 개발비를 삭감했다고 해서 거스너가 최고의 기술력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2년의 개발기간을 거친 끝에 8,500만 달러를 받고 미국 정부에 납품한 슈퍼컴퓨터는 당시까지 나온 컴퓨터 중에서 처리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도 유명했다. 또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 시장에 IBM이 내놓은 '바이어 보이스'라는 소프트웨어는 당시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제 거스너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기에 빠진 IBM이 처음 새로운 CEO를 구하려고 했을 때 누구도 그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만일 거스너가 아닌 다른 사람이 CEO가 되었더라도 IBM이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만큼 빠르게 살아날 수 있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거스너가 일궈낸 'IBM의 부활'은 아마 기업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IBM이 이제는 완전히 되살아났다고 여겨지던 1997년 초, 거스너는 긴장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전 세계 IBM 임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영원히 기업을 회생시키는 일만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IBM을 회생시키는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발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키워드

루거스너,   IBM,   리더십,   CEO,   잭웰치
  • 가격1,5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3.11.02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031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