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된 탈이성, 탈주체와 같은 탈근대적 해체론과 깊은 맥락을 이룬다. 중심에서 주변으로의 이동과 함께 제기된 이러한 문제 의식은 여성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발견했어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여성의 독립성, 자기 확신성, 정체성 등을 우리에게 새삼 확인시켜 주며 사회 권력에 대해 비판적 퍼스낼러티를 가져다 준다. 탈구조주의, 데리다의 해체론, 프로이트와 라깡의 정신 분석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페미니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여성주의는 부권제적 억압과 지배에 도전하며 이성, 합리성, 자율성, 논리 등의 남성적 가치들을 극복하려 한다. 이와 함께 여성주의가 여성을 젠더화된 주체(gendered subject)로 인정하지 않고 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시각에 성 차이를 고려한 평등을 강조하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략)몸과 여성의 문제는 거만하기 짝이없던 거대 이성을 반성시키며 외면하려 했던 가치들을 우리에게 중요하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90년대 후반부터 우리 시의 담론을 형성하며 지속적인 변모를 꾀하고 있는 '몸시'(육체시)와 '여성시'(페미니즘시) 또한 이러한 맥락과 일정하게 연계를 이루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환경 속에서 보다 인간적인 삶의 문제를 궁구하고 있다는 면에서 곰곰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 영혼의 거소
- 방
바슐라르는 인간에게 집은 안정의 근거와 환상을 주는 이미지들의 집적체로서 우리들을 중심성에 대한 의식으로 이끌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는 집이란 우리들 최초의 세계이며 하나의 우주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집은 탄생의 장소인 동시에 내면 존재의 거소이다. 방 역시 집과 마찬가지로 추억과 희망을 매개하는 장소이며 원초적인 내면 공간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그것은 방이 집의 세부 장소로 우리들 영혼이 이곳에서 둥지를 틀고 섬세한 날개를 펼치면서 사면의 벽 안에서 파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방을 노래한 시는 존재의 내밀한 부름에 화답하는 영혼의 떨리는 숨결에 다름 아니다.
수많은 꿈의 문을 여는 열쇠, 내면을 환하게 비추는 말의 거울인 방의 시는 그리하여 우리들을 존재의 숙소로 이끌어 상처받은 영혼의 모습을 하염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에, 방의 시는 그 웅대한 날개를 펼쳐 우주의 신성혼과 만나 정신을 새롭게 생식하기도 한다. 그것은 멀치아데의 말처럼 몸이 제의적으로는 세계의 모형인 우주와 동형을 이루며 하나의 집(방)과도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방은 영혼의 거주지이다. 그곳에는 태양과 어둠이, 감옥과 낙원이 서로에게 입을 벌린 채 스며들어 혼돈을 이루며 끊임없이 기이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에너지에 휩싸여 공희(供犧)된 수많은 감정들은 방 안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어느 순간 지붕을 뚫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영혼의 창이며, 길이며, 눈인 방은 그러므로 그 살아 있는 숨결로 시간 속에서 세계의 중심을 지향한다. 이 세계의 중심 속에서 시인은 견고한 내면의 균형을 꿈꾸며 파동하는 삶의 다양한 초상을 체현하며 살아있음의 풍요로움을 관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