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세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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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ASEAN의 출현 및 장래성

Ⅲ. ASEAN의 회원

Ⅳ. 한국과 ASEAN의 관계

Ⅴ. 결론

본문내용

베트남은 단기간 내에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하였고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에서도 1992년 12월에 한국과의 국교수립이 이루어졌으며 1994년 2월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지 조처를 해제하고 1995년 7월에 국교정상화를 결정하였다. 이로써 베트남의 국제관계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에 앞서 베트남은 EU와의 우호협력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 ASEAN의 7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주도세력은 놀랍게도 미국과의 전쟁을 수행한 혁명 1세대들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는 베트남의 지배세력과 일반 국민들이 국익을 위해 자신들의 적대감을 버린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로 볼 때 베트남은 향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10.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2차 대전 후 초기에는 시하누크 왕의 중립주의 정책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1970년 4월 론 롤 장군과 마탁왕자의 쿠데타로 인해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철저한 반공정책으로 당시 미국과 베트남 간의 전쟁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캄보디아 내의 공산세력을 축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하누크와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지 혁명군은 론 롤을 격파하고 다시 프놈펜을 되찾았다.
정권을 장악한 폴 포트는 롤 론 정권에 협조했거나 동조했던 사람, 반 혁명분자와 심지어 크메르공산당 내에서도 친 소련, 친 베트남 성향의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처형하였다. 이렇듯 초강경 민족주의를 앞세운 폴 포트는 베트남과 중국,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1977년 1월 8일 베트남에 의해서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다.
그 후 폴 포트는 크메르 루지 게릴라 6만명과 민병 5만 정도의 병력으로 반군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프놈펜 정부는 소련의 괴뢰정부인 헹 삼린 정부와 실질적인 통치대상이 없는 민주 캄푸치아 연립정부 간의 괴리로 캄보디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각 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였으며 1992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 내의 게릴라세력을 무장해제 시키고 캄보디아 난민을 본국으로 귀환시켰다. 캄보디아 정부도 크메르 루즈를 고립시키기 위해 ASEAN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1993년 5월에 자유총선이 실시되었으며 99년에는 ASEAN에 가입하게 되었다. 캄보디아는 아직 앞날이 불투명하다. 폴 포트가 비록 사망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태국 국경 근처에는 많은 크메르 루지 게릴라들이 있으며 그들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태국과의 관계도 미묘하다.
Ⅳ. 한국과 ASEAN의 관계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이 이미 한국과의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역협력기구로서 ASEAN과 한국이 공식관계를 수립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국은 1989년에 ASEAN의 부문별 대화국이 되어 1991년부터 ASEAN의 완전대화상대국으로 격상된 이래 ASEAN과 본격적인 상호협력 증진 방향을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ASEAN은 한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상호 호혜적인 경제협력관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정치, 외교적 지위향상 등으로 한국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대 강국들의 대외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 왔기 때문에 ASEAN은 한국 외교의 주요 관심대상으로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ASEAN을 한반도 주변의 4강 세력에 버금가는 주요 세력으로 새롭게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 첫째 이유는 상호보완적인 경제협력의 문제이다. 다음으로 ASEAN으로 대표되는 동남아가 한국외교에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ASEAN 회원국들은 모두 아태지역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강대국은 아니지만 ASEAN이라는 지역협력체를 중심으로 아태지역 협력에 상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셋째로는 한반도의 안보문제가 한-미 관계나 한반도 주변의 4강과의 협조관계 또는 유엔 등 큰 국제기구가 아닌 보다 협조적이고 작은 틀 속에서 의외로 보장될 수 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Ⅴ. 결론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거나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동북아에서 약소국인 지금 살아 남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강대국 중 하나에 붙어서 생존하는 것이며 각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에 중요한 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자는 지금까지 한국이 취해왔던 방법이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GNP을 초과하거나 같게 될 것으로 예견되는 2030년이나 2040년경에는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근접한 우리로서는 중국을 무시하고 지금처럼 미국에게만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중-일의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만이 대화를 한다면 미국을 자극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국간 협력을 위한 좋은 場은 ASEAN 회담과 ASEM 회담이다. 이 두 회담에는 미국이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3국간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ASEAN 국가들은 중국과의 피할 수 없는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으며, 75년 이후 일본경제에 예속되어 왔기 때문에 두 국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때 동남아 국가들과의 외교를 확고하게 다져 놓을 필요가 있다.
< 참고문헌>
동남아정치연구회 편역,【동남아의 정치와 사회】, 서울: 한울, 1992.
김희오,【제3세계정치론】, 서울: 백산, 1999.
동남아지역연구회,【동남아의 정치변동】, 서울: 21세기한국연구재단, 1995.
양승윤,【동남아와 아세안】, 서울: 한국외대출판부, 1998.
김진철,【세계정치경제론】, 서울: 세계정치경제연구소, 1994.
제330호,【한겨레21】
제10권 제44호(통권 453호),【뉴스위크 한국판】
조선일보 99. 5. 1
  • 가격1,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3.11.14
  • 저작시기2003.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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