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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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쇄술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1. 인쇄란 무엇인가

Ⅱ본론
1. 우리 나라 인쇄의 기원
2. 통일신라시대의 인쇄
3. 고려시대의 인쇄
4. 조선시대의 인쇄

Ⅲ 결론

본문내용

안의 글씨를 바탕글씨로 삼아 동으로 활자를 주성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을해자이다. 이 활자에서는 한글활자가 아울러 사용되어 많은 국역서가 인출되었으며, 임진왜란 직전까지 갑인자 다음으로 오래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인본이 비교적 많이 전래되고 있다.
16세기로 접어든 중종조에 있어서는 종래 사용하여오던 동활자에 없어진 것이 생겨 목활자의 보충이 많아졌고, 또한 마멸이 심하여 쓸 수 없게 된 것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자치통감≫에서 글자모양이 가늘고 크기가 적절한 것을 골라 바탕글자로 삼고 활자를 새로 주조할 것이 발의되는 동시에 1516년(중종 11) 1월에 주자도감이 설치되고, 4월에는 그 업무를 맡아보았던 낭관들에게 논공행상까지 하며 활자의 주조를 진행시켯던 것이나, 5월에는 심한 가뭄으로 주자도감이 혁파되었다. 이때 주성된 활자의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를 흔히 병자자라 일컫고 있다. 조선 전기에서 고도로 발달하여온 활자 인쇄시설은 임진왜란을 겪는 사이에 완전히 파괴 또는 소실, 약탈되었다. 정조가 집정할 때부터는 문예부흥정책에 치중하고 역대 선왕의 인쇄정책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힘썼기 때문에 조선 후기 활자인쇄문화를 더욱 찬란하게 꽃피게 하였다. 중국의 사고전서에 들어있는 ≪강희자전≫의 글자를 바탕으로 삼고 나무활자 32만개를 만들어냈는데, 이를 생생자라 일컫고 있다. 그 새김이 정교하고 글자체가 아름다워 1795년에는 이를 자본으로 하여 동활자를 주성하였다. 정리자 또는 그해의 간지를 따서 을묘자라 일컬으며, 크고 작은 활자를 합쳐 30만자였다. 관서에서의 활자주조는 위에서 든 것이 마지막이다.
2)목판인쇄술
조선조의 관판본은 활자인쇄에 의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활자인쇄는 인출 부수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요구되는 책을 넉넉히 공급하여 줄 수 없었다. 그 결과 목판인쇄가 아울러 촉진되었다. 더욱이 조선조의 건국이념인 숭유정책을 적극 실천으로 옮기기 위하여서는 유교경전을 비롯한 역사·시문 계통의 서적을 전국적인 규모로 펴내어야 하였다. 주자소에서 찍어낸 활자본, 또는 중국에서 도입한 책을 복각 또는 판각하여 그 책판을 잘 간직하면서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찍어내어 두루 공급해주어야 하였다. 목판인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세종이 즉위한 때부터였다. 그 전래본을 보면, 왕명으로 간행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 새김이 대체로 정교하다. 종이도 정성껏 떠서 튼튼하고, 먹색도 시커멓게 윤이 나서 선명하다. 중앙관서에 있어서의 목판인쇄는 주로 주자소와 교서관, 규장각이 담당하여왔다.
Ⅲ 결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의 인쇄는 8세기초에 목판인쇄술을 시작으로 고려시대 금속활자인쇄술로 이어져 조선시대까지 계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목판인쇄술은 글자가 만들어지고 책을 제작할 단계까지 발달하면서 처음에는 글을 옮겨 베꼈으나 잘못 베끼거나 줄을 빠뜨리는 일이 발생하자 목판에 새기게 되면서 발달하였다. 신라시대에 판각된《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시초로 고려의《초조대장경》,《재조대장경》,《속장경》이 판각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목판인쇄는 불경의 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대내적으로는 불교국가를 이상으로 하는 신라왕조의 자주적 토대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국가정책과 영합하여 불교문화
를 훌륭하게 한 데 기인하고, 대외적으로는 당시 동양에 있어서의 문명국의 위치라는 것이 불교문화의 깊이 여하에 따라 좌우되었던 만큼 국제적인 경쟁정책과 호응하여 그 문화를 더욱 찬란하게 꽃피게 한 데서 말미암은 것임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활자인쇄 술은 목판인쇄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며 금속기술이 발달해야 했다. 이에 금속기술이 발달한 고려시대에 활자금속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활자인쇄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여러주제분야에 걸쳐 필요한 책을 고루 찍어 널리 반포하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특히 민간에서까지 활자를 다양하게 만들어 인쇄하게 되어 서민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문화사적인 면에서 그 의의가 크게 평가된다. 이러한 인쇄는 인류의 두뇌·학문·과학 및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급진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있어서는 전자·광선·자력 등으로 인쇄물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식 연활자가 출연하기 이전에는 오로지 목판과 활자판의 인쇄가 인류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구실을 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의 목판과 활자인쇄술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뛰어난 문화재이다
.

키워드

인쇄술,   인쇄,   출판,   금석문,   글자,   판화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4.11.20
  • 저작시기200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3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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