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 한반도 영향력은 막강했지만, 당시에는 한미 양국이 냉전체제 하에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공통된 노선을 바탕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심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몇 달간 지속된 남북관계 화해무드 이후, 거의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한 기타 남북 간의 교류가 거의 끊어져있는 상태이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돌아올 만큼 우리의 정책이 새로 등장한 미국 행정부의 개입에 따라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 강경 보수정권의 등장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북미협상의 성과들을 손상시켰고, 기존의 협상 구도를 매우 뒤얽히고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은 한반도에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있다.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동시에 미국과 상호 특사 방문 협상 등을 하며 북미관계를 시도하여온 북한을 큰 딜레마에 빠지게 하였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평화적 생존을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 한 북미관계의 개선은 당분간 어렵다고 할 수 있으며 결국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인한 환경 변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미관계 개선이라는 정책의 최우선에서 탈피하여 더 이상 대미관계에 매달리지 않는 정책으로 전환하게 하였으며,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여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낳게 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중국 및 러시아의 관계 강화는 미국에 대한 무언의 압력과 협상카드로서의 의미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 예상되는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가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짐에 따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불균형이 초래하였다. 이러한 불균형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에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요소’를 개입시키지 않고는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며, 대북경제제재조치의 해제를 비롯해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문제, 군축 등의 본질적인 문제 등이 이와 같은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Ⅲ. 결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한 협력의 역사와 현재의 실태를 분석해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힘의 관계로 미루어 보면 북-미와 한-미관계의 두 축은 남북관계와의 사이에 상호 규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곧 남과 북 공히 모두 미국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남북관계의 전도가 대미관계의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한국의 대북정책의 입장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대전제로 할 때, 미 정부의 대북정책 재조정 및 추진과정에 한국 입장을 반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구체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이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반세기 대북접촉 경험과 북한지도부의 의도에 대한 한국 나름대로의 판단에 기초한 현실적 정책이란 논리를 미국 내에 알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나아가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 정치권력기구에 안면이 있는) 정부 안팎의 전문인사들을 활용해 다양한 창구를 통해 미국 내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홍보가 성과를 거두려면 미국 내 정책결정 과정을 감안할 때, 의회와 언론 및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한 정책홍보 노력을 해야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