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와 임나일본부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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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임나일본부와임나일본부설

2.임나일본부설의근거

3.임나일본부설에관한학설

본문내용

같은 성격을 가진 기구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학설은 일본서기나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내용과 전혀 다른 주장이다.
⑥ 외교사절설(外交使節說)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 관련 사료에 일본부가 통치나 군사적 역할을 한 흔적이 나오지 않은 것에 주목하여 제기한 학설이다. 이 학설은 부(府)는 기관이나 관청이 아닌 사신에 해당하는 것이며, 임나일본부는 대화왜가 임나에 파견한 사신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1970년대부터 스즈키야스타미 우케다마사유키 오쿠다쇼우 키토우키요아키 등에 의하여 확립되었고, 한일 고대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학설이다.
이 설을 주장한 스즈끼는 1996년에 발표한 "고대왜국과 조선제국"에서 6세기 전반 왜 왕권은 한반도의 금속. 문물을 수입하는 대신에 백제에 병사파견, 무기공급과 같은 군사력을 제공하였으나 이를 백제의 용병으로 볼 수는 없고 자립한 왕권 사이의 동맹관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백제가 왜왕에게 볼모를 보내고 왜군의 파견을 구한 시기는 왜국이 주(主)이고 백제는 종(從)인 종속적 동맹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 안라(安羅)에 있었던 일본부 즉 왜왕이 파견한 군사력을 가진 제왜신은 왜왕의 통제아래 있었고, 왜 왕권이 안라의 군사.외교에 관여한 흔적이 있으므로, 왜 왕권과 안라와의 관계는 종속적 동맹관계에서 진일보한 종속형태였으며, 6세기에 30여년동안 백제와 안라(安羅)는 왜국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설은 흠명천황기에 나오는 아라(安羅)를 경상도 지방에 있었는 아라가야로 해석하고 있으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경상도 지방에 있었는 아라가야는 6세기 초에 신라에 합병되었고, 흠명천황(A,D 540년~) 시대에는 이미 멸망하고 없었다.
역시 외교사절설을 주장한 우케다는 사료상으로 임나일본부는 6세기 전반에 안라에 있던 일본부만을 가리키며, 일본부의 고훈(古訓)은 "야마토노미코토모치"로 그 뜻은 일본왕이 임시로 파견한 사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야마오는 일본서기의 기사들을 재검토하고 백제사와의 관련성을 첨가하여 왜 왕권이 임나 경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5세기 후반에 백제의 대신이면서 임나의 지배자였던 목만치가 왜국으로 이주한 이후부터라고 하였다. 왜국은 그를 맞이함으로써 임나에 대한 연고권을 가지게 되어 왜 왕권이 가야지역에 관인을 파견한 것이 임나일본부라고 하였다.
이처럼 근래의 일본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종래의 임나일본부설과 많은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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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9.16
  • 저작시기2004.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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