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조사사업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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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지조사사업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1. 왜 토지조사사업인가?
본론
1.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된 역사적 조건-국내적상황
2.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된 역사적 조건-일본의상황
3. 토지조사사업의 특징
1. 토지조사사업의 진행과정상의 문제점들
2. 근대적 소유권 확립의 전개방향
3.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4. 토지조사사업의 특징이 농촌사회 분화에 미친 영향
결론
1. 왜 지주제는 유지되었는가
2. 토지조사사업의 특징­요약
3. 마치면서

본문내용

사사업은 말하자면 많은 한국농업 한국농민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일제의 초기 농업식민책과 지주제」』, 김용섭, 지식산업사, 2000, pp50∼51
2. 토지조사사업의 특징­요약
거론한 것과 같이 토지조사사업의 특질은 봉건적인 영세농 및 소작관계의 성립이라는 상호불가분의 관계였다. 즉 한쪽의 과정이 발전함에 따라 다른 한쪽의 과정 발전이 촉진되는 관계, 그리고 그것은 토지조사사업 그 자체의 특질인 토지영유의 근대적 성질과 봉건사회로부터 그대로 답습된 영세농적 생산양식을 기초로 한 반봉건적인 영세농 및 중간농민을 희생하고 계급적 양극단을 발전시키면서 지주 부농층과 반농노적 빈농층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즉 농업에 있어서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토지조사사업 그 자체의 특징에 의한 농업생산에 있어서의 특수한 발전, 더욱 농촌사회 분화의 특수한 발전, 그리고 이것은 조선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의 과정으로서 이미 토지조사사업 그 당시에 성립된 반봉건적 생산방법이 사업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농업생산에 있어서는 토지영유의 근대적 성질과 상품적 화폐적 관계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생산방법은 반봉건적방법이 지속되었고, 중산층의 사회적 지위 향상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와도 농촌은 봉건사회의 지배 계급이 그대로 유지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즉 시대가 변해도 지배계층의 변하지 않음에 따라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는 시민혁명과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으나, 일제는 의도적으로 자국민의 대지주를 통한 조선농업의 경제적 지배를 위해 중산층 발전의 적인 대지주·지주제를 보호함으로써 사회계급의 분화로 사회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사라지게 하였다.
3. 마치면서
본인은 토지조사사업을 당시의 상황과 아울러 지주제의 존속에 중심을 두어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역사적 사건이란 우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상황속에서 생겨난다고 본인은 믿었고, 지주제의 존속은 토지조사사업이 근대적 사업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였기에 중점을 두었다. 결론 부분은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내용속에서 가능한한 객관적 근거자료를 제시하기 위해, 출처가 명확한 자료만을 인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업'의 전제인 근대적 토지소유론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적인 근대적 토지소유개혁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인정한다. 따라서 이제는 근대적 토지 소유개념을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 혁명에 이후의 부르조아지의 성장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업'을 근대적인 사업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견해에 의한 것으로 "밑으로부터의 인민의 근로주의적 요구를 억압하고 지주 부르조아지의 형식적 대소유를 지지하는 계급적 성향을 본질"로 하는, 대체로 귀족지주의 대토지소유를 지지했던 지주적 개혁으로서의 경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토지소유가 자본가층을 위한 개혁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일찍이 정도전의 수조권문서를 불태우는 토지 개혁과 해방 이후의 이승만 정권의 토지 개혁에서 볼 수 있듯이, 토지 소유의 집중은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으로써 집권자들의 개혁을 단행케 했다. 그러므로 부르조아지를 위한 소유권 보장과 토지 집중이 근대적 산물이라도는 생각치 않는다. 비록 서양에서 그러한 발전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그것을 조선사회에 그대로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일찍이 개인의 소유개념이 서양보다 발달한 사회였고, 문중과 같은 공동의 특징적 소유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가지 제도적 면만을 가지고 '사업'의 근대성을 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본인은 역사적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민중이 어떤 영향을 받는것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적 소유개념을 민중을 위한 소유권 확립·지주의 폭권방지로 이해한다면, 토지조사사업의 근대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 김용섭, 지식산업사, 2000
『조선토지사업의 연구』, 김홍식외, 민음사, 1997
『식민지시대 사회성격과 농업문제』, 오미일외, 풀빛, 1991
『한국역사』,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1992
『역사와 현실­제31호』, 최원규외, 한국역사연구회, 2001
『20세기 우리역사』, 강만길, 창비, 2000
  • 가격1,5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4.10.29
  • 저작시기200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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