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발전 및 국제질서 부상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안보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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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경제발전 및 국제질서 부상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안보적 대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중국의 경제발전
1.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
가. 중국 봉건사회의 경제
나. 1949년 이래 1978년 이전까지의 중국경제
다. 1978년 이후 WTO 가입 전까지 중국의 경제
라. 중국의 WTO 가입과 향후 중국 경제의 전망
마. 새로운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중국 경제
바. 중국 경제 발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2. 중국 경제의 부상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전략

Ⅲ. 중국의 국제관계
1. 중국의 외교안보전략 목표와 추진 환경
가. 21세기 외교안보전략 목표
나. 외교안보전략 추진 환경
2. 잠재적 분쟁요인에 대한 중국의 정책선택
가. 대만문제
나. 남사군도 영유권문제
다. 한반도문제
3. 중국의 국제질서에서의 부상과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Ⅳ.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심각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세계시장 확보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중국이 경제발전을 통해 대내 안정을 유지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있는 강대국으로 등장할 때, 이는 한국경제 발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평화통일 실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 경제와 한국경제 간 의존도가 증대될수록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중국을 한반도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하는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한 중 간의 정치 경제 군사적 신뢰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Ⅳ. 결론
1920년 베이징 대학의 객원교수로 1년간 중국에 체재했던 버트런드 러셀이 귀국 후에 간행한 <중국의 문제>(The Problem of China, 1922)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의 문제를 고찰한, 이국인이 쓴 최초의 중국론이라는 평판을 받았다. <그들은 10년의 척도가 아니라 백년의 척도로 생각한다. 과거에 중국은 먼저 타타르족에 의해서, 그 다음엔 만주족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든 중국인은 정복자를 동화해 버렸다. 중국 문명은 계속 이어지며 변하지 않은 그대로이다. 두세 세대가 지나면 침략자들이 거꾸로 한층 더 중국화해 버리는 것이다.> 중국은 정복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정복자를 역정복해 버린다는 러셀의 이 말은 중국의 저력을 표현하는데 다름 아니다. 바야흐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이니 동도서기(東道西器)니 하는 19세기적 표현은 모습을 감추고 있다. 제조업을 끌어 들이는 블랙홀, 세계 경제의 오아시스라 지칭되며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만만디'의 국민적 근성을 가지고 당분간은 경제 성장을 위해 대외적으로 평화를 지향하겠지만, 언젠가 동북아시아 패권은 물론 세계 패권 도전의 야심이 없을 리 만무하다고 본다. 오히려 그것이 1840년 이래 상처 입은 중화의 우월의식의 당연한 보상일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다. 도전에 직면했을 때, 슬기로운 응전을 해야 만이 역사에서 도태되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이 분열되고 외침내전에 시달리던 20세기, 그리고 보면 이 시기는 한반도도 외침내전에 시달린 때였다. 그 고난의 역사를 같이 하면서 두 나라는 지금 21세기의 중흥을 꿈꾸고 있다. 그러한 21세기에 정치, 문화적으로 통일되고 경제, 사회적으로 어느 누구도 얕잡아 볼 수 없는 강력한 중국을 이웃으로 맞는다는 것은 한국, 한국 민족, 한국 문화에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과 미래의 우리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슬기로운 응전이 필요하고 기대되는 바이다. 다른 한편, 지난 1840년 이래 지금까지의 시련과 도전에 슬기롭고 의지적으로 응전해 오늘의 강한 중국을 만들어온 중국 국민들에게도 아낌없는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 문화의 일대 중흥기를 가져온 15세기와 18세기는 중국 대륙에도 강력한 통일국가가 출현하여 안정된 성대(盛代)를 누리고 있던 때였다. 세종대왕(1397~1450년)의 재위 연대(1418~1450년)는 중국 대륙에선 주원장(朱元璋)이 원(元)을 내치고, 난징에 명(明)을 건국하였다. 그 뒤를 이어 15세기 초에 즉위한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오늘의 베이징으로 옮겨 북쪽으로는 몽골 고원에 원정을 가서 동북의 여진족을 지배하에 두고 남쪽으로는 베트남을 직할령으로 삼는 등 바야흐로 중원의 세력이 대외적으로 크게 떨치던 때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영 정조의 시대(1724~1800년)도 중국 대륙에서는 강희제(康熙帝)가 청(淸)의 중국 지배를 확립한 뒤에 옹정(雍正, 1722~1735년), 건륭(乾隆, 1735~1795년)으로 이어지는 두 황제가 청조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중국 대륙에 그처럼 강력한 통일제국이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민족적 자아와 민족의 문화적 자아를 찾으려는 갈구와 노력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그대로 글로 쓰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과학을 살리기 위해 각종 천체 관측기기를 제작했고, 우리 국토를 소상히 밝히기 위해 팔도지리지, 팔도지도를 편찬 제작했고, 우리 몸에 맞는 향약 의술의 개발을 위해 <향약집성방>, <향약구급법>, <의방유취> 등의 전적을 편찬 간행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영 정조 시대에는 국학이 크게 발전하여 민족의 자아를 그 뿌리에서 성찰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 서적이 저술 편찬 간행되고, 우리 겨레의 삶의 터전을 돌아보는 지리지와 지도가 새로 편찬되었다. 또한 우리 겨레의 시조와 가사를 집대성한 <청구영언>, <해동가요> 등 책자가 간행되고, 우리네 삶과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화풍과 풍속화가 유행하였다.
그와 더불어 현대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빛나는 도약에의 희망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 세기의 후반기에 우리가 성취한 3중의 혁명, 곧 세계 최고의 고학력, 고경쟁 사회를 이룩한 교육혁명, 전통적 농업 국가를 최단기간에 현대적 중화학 공업국가로 탈바꿈시킨 산업혁명, 군부정권의 개발독재체제 하에서도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꽃을 피운 민주화의 기적을 실현한 정치혁명이 21세기 한국 문화의 중흥을 기대케 하는 현실적 기반이다. 이를 바탕으로 15세기의 세종시대, 18세기의 영 정조 시대에 이어, 21세기는 3백년마다 되몰아치는 한국 문화의 제3의 중흥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1. 김원배, 장경섭, 김형국 편 《중국의 오늘과 내일》 나남출판, 2003.
2. 김소중 《중국을 정복하자》 백산서당, 2003.
3. 린이푸 《중국의 기적》 백산서당, 1996.
4.《차이나 쇼크》매일경제국제부 한중경제포럼 대회경제정책연구원.매일경제신문사, 2001
5. 이근· 한동운 《중국의 기업과 경제》 21세기북스, 2000
6. 조준현 《중국의 경제 발전과 21세기 발전전략》 부산대학교 출판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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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19
  • 저작시기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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