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비교한 힌두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철학 신화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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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교와 비교한 힌두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철학 신화와 종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바르나아슈라마다르마(Varnashuramadharma)의 의미와 네 가지 단계

Ⅲ. Varnashuramadharma와 불교의 출가

Ⅳ. 불교에서 출가의 특징

Ⅴ. 결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물만 될 뿐이다. 이에 대해 붓다는 부와 욕정을 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교에 따르면 행위에는 번뇌가 늘어가는 유루(有漏)와 번뇌가 생기지 않는 무루(無漏)라는 두 가지가 있다. 유루행은 선악의 결과를 낳는 행위이다. 이와는 달리 아라한으로 이끌어주는 사성제에 대한 명상은 선 또는 악의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는 무루행이다. 때때로 불교는 선한 바람으로 청정하게 되고 악한 욕망에 의해 더럽혀진다는 염정법(染淨法)이라 불리기도 한다. 붓다는 열반의 길을 가르친 도덕적인 교사라 할 수 있다. 열반은 지혜를 향한 인간 자신의 노력과 명상적 몰입을 통하여 얻어진다.
즉 불교에서는 열반에 이르는데, 욕망을 악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열 번에 이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힌두사회에서 욕정을 열반에 이르게 도와주는 필수적 요소라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법구경』에서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더 확실한 어조를 띄고 있다(Vishwanath Prasad Varma 1996: p.215).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행위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으로 마음이 평온해진 비구는 모든 자연적 욕망과 행복이 사람으로, 열반에 이를 수 있다. 비구여, 이 배를 비워라! 만일 이 배가 빈다면 더욱 빠르게 갈 수 있다. 욕정과 증오를 끊어버리면 너는 열반에 도달하리라.‥‥비구여, 깊이 명상하면서 경솔하지 마라. 즐거움을 주는 곳으로 너의 생각을 이끌지 마라. 만일 네가 경솔해진다면 (지옥에서) 철구슬을 삼키거나 불타는 곳에 있으면서도 울부짖지 못하리라. 이것은 고통이다. 지혜가 없으면 명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명상이 없으면 지혜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혜를 소유하고 명상을 하는 자는 진실로 열반에 가깝다.
열반에 대해 불교의 입장을 배로 표현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에 물건이 많을 수록 중량이 많이 나가서 빠르게 갈 수 없으며 방향을 틀기 힘들어 진다. 위의 인용문에서도 열반을 이와 같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욕정의 배의 짐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욕정을 짐이라 표현한 것 자체가 욕정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욕정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에 대해 끊어버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힌두 사회의 이상적인 삶의 단계와는 전혀 구별이 되는 내용이고 힌두 사회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자체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열 번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견해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지금까지 논자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힌두이즘의 Varnashuramadharma, 즉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는 각 단계들마다 Dharma가 존재하며, 심지어 부와 권력, 건강과 욕정도 추구해야 할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네 가지 단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보편종교인 불교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는데, 불교와 힌두교가 인과와 업과 윤회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반면에 열반에 이르는 과정에서 욕정이 열반에 짐이 되는지, 아니면 열반을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활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종교관에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다시 말해 끝(목적)은 같은데 그 과정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출가에 대한 서로의 입장도 다르게 된다. 불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좀 더 좁은 길로 가려는 반면 힌두교에서는 좀더 대로로 가고자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는 곳은 같지만 길의 평탄함의 정도는 서로 다르다.
이런 차이점을 초기불교의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 비교해 보았고 불교의 고문을 통해 비교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루터의 만민제사장주의처럼 붓다는 신과 자신 사이에 사제의 필요성을 부정하였다. 싯다르타는 사제를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행위로 다음 생의 결과가 정해진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싯다르타의 삶이 발해주고 있다. 그는 Varnashuramadharma를 충실히 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름대로 Varnashuramadharma의 한계까지도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브라흐만이 주관하는 의례만이 허용되며 브라흐만이 신보다 더 권위있는, 브라흐만이 섬김의 대상이 되던 그 당시의 인도사회에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빠니샤드나 자이나교에서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또한 그는 모크샤로 도달하기 위해 욕정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또는 불교의 문헌에도 나와 있었다. 이것은 욕정이 모크샤로 가는 통로라고 믿고 있던 인도인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주장으로 인도 사회의 중요한 하나의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논자는 평가 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불교가 생성하던 시기에 힌두사회가 영향을 받아 오히려 열반에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힌두사회를 뒤흔들었던 보편종교인 불교가 힌두사회에서 미친 영향력보다 다른 지역에서 미친 파장이 더 컸으며, 힌두교의 신들 중의 한 화신으로 밖에 존재하지 못한 다는 점은 기독교인인 논자에게 예수가 신약에서 말했던 “선지자는 고향에서 배척 당한다”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논제를 준비하면서 교양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함과 많은 부분을 인용한 것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하고 우파니샤드와 자이나교, 불교가 Varnashura
-madharma에 대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언급을 추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진술한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서도 리포트를 검토해주신 강은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Ⅵ. 참고문헌
Vishwanath Prasad Varma 저, 김형준 역 『불교와 인도사상』 (예문서원, 1996)
한국종교연구회, 『세계종교사입문』 (청년사, 1993)
이거룡 『아름다운 파괴』 (거름, 2000)
라디크리슈난 저, 이거룡 역,『인도철학사』 (한길사, 1996)
이거룡, 차차석 『구도자의 나라 : 베다와 불경』 (명진출판, 1999)
류경희 “인도인의 종교의식” (외대사학 제 10권)
조길태 2002. “인도 전통사회를 이어온 통일성과 관용성”, 『인도연구』 제 7권 1호, 1-25.
Mircea Eliade 저, 이은봉 옮김『성과속』 (한길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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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8.16
  • 저작시기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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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9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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