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주요 문화재 답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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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북지역주요 문화재 답사를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답사를 시작하며

Ⅱ. 답사 일정
1. 고창의 고인돌군
2. 신재효 고택
3. 고창읍성
4. 반계선생유적지
5. 우동리당산
6. 개암사

Ⅲ. 답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반계가 이곳에서 많은 후진과 주민등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5. 우동리당산
버스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에 당산나무가 있었다. 거기가 보안면 우동리 마을 입구였는데 수령 300여 년쯤 되는 나무였다. 당산나무 둥지 속에는 높이 2.46m 되는 입석이 안기듯 박혀 있는데 원래 나무 옆에 세운 입석이 나무가 자라면서 나무 둥지 안으로 파고 든 특이한 형상이다.
그 입석과 나란히 7m 높이의 솟대(이 지방에서는 '짐대'라고 부른다)가 서있다. 솟대 위에는 오리가 앉아 있고, 잘게 자른 대나무 가닥들을 달아 깃을 표현했다.
그리고 솟대 아래 밑둥에는 줄다리기 줄을 감아 놓았다.
이렇듯 원형이 잘 보존된 우동리 당산제는 정월대보름날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축제분위기 속에서 치뤄진다. 당산제 순서는 줄다리기 줄을 꼬아 만들고, 돈 후, 남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6. 개암사
반계 선생 유적지와는 반대로 개암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입구에서부터 개암사까지 좌우에 큰 나무들이 펼쳐져 있어 꼭 숲속 한가운데를 걷는 것 같았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은 대웅전이 복구공사 중이여서 대웅전의 건축 양식이라든지 얼마나 웅장한지를 보지 못하고 왔다는 점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에 “묘련왕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조선 인조 14년에 중건된 후 여러차례의 중재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뒤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개암사의 건물들은 백제의 안정감, 조선중기의 다포의 장중함, 조선후기의 장식적인 경향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대웅전은 현판이 큰데 비해 개암사 대웅전의 현판은 매우 작다. 이유는 이곳에 귀신이 많이 나타나 그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현판위에 두 마리의 도깨비 상을 잘 보이기 위해 현판을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뒤집어진 코 때문에 웃음을 자아냈다. 그래도 도깨비를 만들고 난 후에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삼단탱화의 그림을 뒤로하고 가운데 앉아계신 부처 어마어마한 화강암으로 받침거북을 삼고 십이지상으로 공포를 장식해 놓은 일주문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가듯 신비함을 나타내었다.
삼단탱화의 뒷 그림을 배경으로 앉아계신 부처님은 석가불상이고 좌측으로는 문수보살상 그리고 우측으로는 보현보살상이 모셔지고 있다.
Ⅲ. 답사를 마치며
오후 늦게 익산에 돌아왔지만 피로를 무릎쓰고 다녀온 보람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답사 도중 이순신 촬영장을 거쳐 해변가에서의 휴식 또한 즐거울 수밖에 없는 즐거운 답사 였다.
전북 지역은 향토문화가 그렇게 많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고창 부안 지역을 돌면서 그렇게 작은 지역에도 향토문화가 산재해 있으며 조상들의 삶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문화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목 록
Ⅰ. 답사를 시작하며
Ⅱ. 답사 일정
1. 고창의 고인돌군
2. 신재효 고택
3. 고창읍성
4. 반계선생유적지
5. 우동리당산
6. 개암사
Ⅲ. 답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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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5.12.05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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