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의식구조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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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의식구조와 정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서론
1. 생활
2. 일과 직업
3. 사회적 관계
4. 일본의 와(和)사상과 일본국민
5. 혼네와 다테마에
6. '신' 일본형 경제시스템의 모색
7. 고용제도의 주요 변화
8. 사무라이 정신
결론

본문내용

폐지되는 메이지 유신까지 - 사무라이가 거의 모든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사실 사무라이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농업을 겸하면서 유사시에만 사무라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것이 16세기 말 도요토미의 병 · 농 분리 정책으로 농민에서 분리된 하나의 지배 계층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사무라이에게는 세 가지의 특권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기리스테고멘(切捨御免)의 특권과 타이토(帶刀)라는 특권, 그리고 묘지(名字)의 특권이었다.
기리스테고멘은 평민이 사무라이에게 누를 범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목을 벨 수 있는 특권이며, 타이토는 칼을 허리에 차고 다닐 수 있는 특권, 그리고 묘지는 성(姓)을 말하는 것으로서 성(姓)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특권이 부여되는 만큼 특권을 누리는 자로서 지켜야 할 생활 규범 또한 엄격했다.
그들은 무사도에 어긋나지 않는 사무라이로서의 생활 규범을 엄격히 준수해야 했으며 생활 또한 사치스러워서는 안되었다.
사무라이에게는 무사로서의 예법이나 무술 훈련뿐만 아니라 중국의 학문 전반에 관한 지식이나 교양도 요구되었다.
― 사무라이정신이 현대 일본 생활에 미친 영향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무사는 먹지않아도] (부시와쿠에네도) 란 말이 미덕이었다.
소식하는 습관은 지금까지 내려왔다.
[주신구라] 주군의 원수를 죽이고 자결한 이야기는 무사도의 근본이며 [충성]정신과 비슷하다.
무사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양반 귀족계급이었다. 즉결심판권이 있었으며, 서민들은 항상 말을 조심해야했다. 현재 일본말의 경어체가 복잡한 발달을 가져왔다.
무사문화는 주군과의 격식, 출전식, 각종 의식행사시 엄격히 진행되었다. 이는 현재 일본의 술문화를 가져왔다. 담배는 부모앞에 맞담배가 될정도로 관대하나 술은 관대하지 못하다 지금도.
무사의 하라키리 [셋부쿠]는 무사로서 자존심이고 최고의 영예로, 스스로 명예스럽게 배를 가르고 죽는것이다. 이는 현재 야쿠자문화의 유비키리 (손가락자름) 으로 이어졌으며, 기업체나 단체장등이 사회적물의를 일으켰을때 직원탓을 하지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자살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시장판에서 떡장수가 무사 아들이 떡을 훔쳐먹었다고 하자, 아들에게 결백을 물어보았다. 떡장수가 계속우기자 무사는 아들의 배를 그자리에서 갈라 창자를 휘집고는 떡이 없자 그자리에서 떡장수의 목을 쳤다는 이야기는 무사의 청렴결백함을 상징하며 한국의 청렴결백한 선비문화와 비슷하며, 일본은 어릴적 애들 교육을 시킬때 가장먼저 하는것이 니것 내것 등의 구분을 확실히 가르친다.
다케다신겐의 풍림화산 , 도쿠가와가의 명장이었던 혼다타다카츠의 정신은 지금도 정신 수양과 서도에서 자주다루는 정신이다.
무사집안에 다실은 전쟁의 피로와 손님과의 진솔한 대화를 하는장으로서 이순간은 다시오지않는다고 하는 그사람과 차마실때의 최대한 격식과 예의를 다도라는 법식에따라 행하는 정신은 오늘날 일본다도를 더욱더 운치있게 했으며, 매사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일본의 정신이 되었다.
일본무사는 왼쪽에 칼을 차기때문에, 우측통행을 하면 칼이 부딪히는 현상으로 칼부림이 나기쉽다. 이로인해 좌측통행을 하였고, 현재 일본의 도로는 한국과 달리 좌측통행이다.
무사들의 여흥이었던문화,연극이나 가면연극(노 카부키 )이외의 음악 (샤미센),분라쿠 단카 하이쿠 등의 여흥은 귀족이나 무사의단합과 서민들의 사기증진을 위해 쓰였다.이는 현대 일본사회의 테레비젼 만담이나 라쿠고 극장공연등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 무사들의 검수련은 수많은 유파와 도장을 탄생시켰고, 검도는 국제적인 스포츠가 되었다.
―사무라이의 윤리 및 태도
무사계급의 중요한 윤리로 충성외에 勇(용기)을 생각 할 수 있다. 유교의 고전에 친숙한 무사들은 中庸(중용) 제 20장의 “知仁勇三者(지인용삼자), 天下之達德也(천하지달덕야)(知仁勇 이 세 가지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德이다)“에 착안하여 그것을 무사도의 勇(용기)과 결합시켰다.
이와 같은 勇武(용무:용감하고잘싸움)의 덕목을 중시하는 사회통념 속에서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 기초를 둔 자본주의 경쟁원리를 비교적 쉽게 도입할 수 있다. 한편 사무라이는 主君(주군)에 대하여 무조건 복종함을 원칙으로 하며 주군에 대한 반항을 가장 극악한 죄로 간주한다. 주군은 부하 무사에게 ‘領地’(영지:땅)를 내림으로써 은혜를 베풀며 사무라이는 전쟁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인 것이다. 또한 사무라이는 家長(가장)의 가르침에 복종하며, 가장의 가르침에 불복하는 자는 ‘義切’(의절)의 방식으로 불복자의 명예와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은 계급과 질서의식의 고정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무라이의 이상적인 생활방식은 ‘피’ 와 ‘눈물’이라는 상반된 개념으로 표현 될 수 있다. 여기서 ‘피’는 전투정신과 영웅적 기백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들은 죽음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눈물’은 약자에 대하여 보이는 동정심을 의미한다.
사무라이의 생활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철두철미한 반성적 태도. 즉 사무라이는 자신의 인격에 맞는 행동을 하였는가 항상 검증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둘째, 사무라이는 생활의 검소, 소박함을 중히 여기며, 전쟁에서는 사무라이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셋째, 그들에게 있어 염치를 아는 것이 최고의 도덕준칙으로, 명예가 훼손되었을 경우 ‘割腹’(할복)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애쓴다. 이때 목숨을 버리면서 수호하려고 하는 곳은 개인의 명예가 아닌 사무라이의 신분과 명예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무라이의 문화형태를 ‘수치감의 문화’(sense of shame)로 간주하며, 그들은 강렬한 감정적 색채를 띤 사회도덕과 여론의 구속력과 집단 안의 개인의 명예를 중시한다고 하였다.
전통적 일본사회의 지배계층은 사무라이들이었으며 그들은 일상생활에서의 節約(절약)과 儉素(검소)를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지배계층이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유도한다고 했을 때 현대 일본인들의 절약과 검소의 정신은 바로 위로부터의 행위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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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9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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