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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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텍스트 접근을 위한 전략
2.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비교
3. 실체. 속성. 양태 그리고 스피노자의 신
4. 반인간주의적 사고로의 진전
5. 반인간중심적 사고의 개진
6. 스피노자의 공헌과 한계

Ⅲ. 결론

본문내용

인간에게 벅찬 영역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두발로 서서 땅을 딛고 있으며, 동시에 하늘을 보는 괴로움을 갖는데서 시작된다 보여지고, 적어도 성 프란체스코처럼 신의 체험을 한다하더라도 그 신성은 오직 신성한 체험을 한 개인의 경험이라 수세기가 흐른 지금의 사람들은 다만 이야기로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역시나 인간의 한계에 대해 되새김질 할 뿐인 듯 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런 오성도 지성도 제한된 한계에서 나는 스피노자가 정당하다고 본다. 적어도 근대의 광기는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아직 완전히 스피노자라는 한 철학자를 이해했다 라는 것은 오만이 아닌 철없음이라고 본다. 따라서 개인적 스피노자의 문제점을 좀 더 깊이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잘은 모르는 점이기에 두렵기는 해도, 데카르트가 그토록 정초하고 싶었던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라는 것, 예컨대 칸트에게서도 학문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힘겨운 근대의 싹을 스피노자는 일원론으로 너무나 단순화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일원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별자 속에 보편자로서 보는 관점과 어떻게 다른지 사실상 차이를 잘 모르겠다. 이 차이점이 모호해짐으로 인해 근대성을 연 데카르트에 대해 견제의 힘을 가진 듯은 하지만 그 견제가 가지는 것은 고대철학의 복귀는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피노자에 매료가 되었다. 보고서 중에서는 반인간주의라고 붙였지만 그다지 스피노자의 생각을 잘 반영하지 못한 용어인 듯 하고, 나는 스피노자를 향한 걸음에서 스피노자가 가진 생각 모두를 정말 애착 어리게 보았다. 이는 내가 정말 정초하고 싶은 생각을 옮겨놓은 듯하다. 예컨대 데카르트의 대상을 평가절하 하거나 아니면 도구화하는 그런 주체의 자리 매김이 아니라, 대상과 조화로움을 찾는 넉넉함이 느껴진다. 이 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스러움이 아닐까 한다. 직선적인 대상의 인식이 휘어서 대상을 경유해서 다시금 주체에게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나의 생각에서는 진정한 학문, 예컨대 삶에 대한 이해, 성찰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세상이 너무나 물화가 되었고, 기계적으로 되었으며, 개인들은 그 삶의 욕구와 생활이 분열적이며, 공동체의 인간이라는 삶 냄새가 아파트 콘크리트로 파편적으로 흐를 때, 스피노자의 꿈은 인간이 진정으로 다룰 이야기는 바로 삶이라는 것을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준다. 물론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근대의 무자비한 실증주의와 과학을 잉태한 이성지상주의에서 너무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대해서, 같은 근대성의 분열에서 이렇듯 인간 지성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또한 인간에게 희망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Ⅲ. 결론
스피노자의 이론적 평가인 업적과 성취는 위장에서 나름대로 다룬 듯 하다. 물론 너무나 소박한 나의 지적인 한계 안에서 개진된 것이라 부끄럽고 송구하다. 따라서 감히 결론이라는 말을 꺼내기는 어렵고 다만 내가 스피노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을 간략히 적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피노자에 대해 원하는 만큼 읽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자족은 나의 지금의 생활을 비추어보는 지점에서 그렇다. 처음에 이 책을 읽겠다는 신념에 겁없이 대들었지만 곧 나는 내가 잘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첫째는 철학적 사고의 단련이 없었다는 점, 이점은 다시 세분화한다면, 철학적 역사적 맥락이 부족했다 라는 점, 그리고 철학적 텍스트와 철학 그것도 근대에 그 혼미한 과정 속에서 정초 된 텍스트를 대면하기에는 나의 글읽기가 부족했다 라는 점에서 수월하지 않았다. 둘째는 이 막막한 스피노자를 향한 항로에 주위에서 도움 줄 만한 사람 역시 없었다는 점,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 한탄하고, 한편으로는 스피노자를 미워한, 우습지도 않은 생각들을 지나서 정말 조야하고 소박하지만 정리해 낸 것에 만족한다. 스피노자에 생각을 이리저리 들추면서 내가 받은 교육이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한 것에 의해 얼마나 훈육되었는가에 놀라웠다. 내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많은 이론들이 내 안에 녹아져 있고, 그 담지된 이론들이 발현 속에서, 흡사 데카르트적인 도구적 이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용어로서 내지 베버는 합리화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지는 것들에 대한 위험성을 다시금 인식했다.
내지 냉철한 합리적 이성만 존재하는 핏기 없는 사이보그처럼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나를 되돌아보며 성찰하게 했다. 스피노자를 전체적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스피노자에 대한 작은 조각으로 스피노자를 얘기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그리고 이런 스피노자가 기계적 관계로서 세상을 이해한다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같이 맥을 한다고 사람들이 비판하지만, 나는 스피노자가 정당하다고 본다. 요즘의 어린아이들은 막무가내이다. 예컨대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오직 관철되지 않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칭얼거리고 울고... 현재 인류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비가 오는 것도 눈이 오는 것도 싫어한다. 물론 약간의 낭만을 위해 적당함을 유지한 수준에서는 타협하지만, 곧 그들은 변덕이 들끓고 비와 눈을 조작해 내기 위해 축구장에는 돔을 덮고, 눈에는 염화칼슘으로 눈을 없애버린다. 그것 모두는 인간을 위한 것들이다. 모든 생명은 이러한 자연을 조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에 적응하여 살뿐이다. 근대자본주의의 욕구는 어느덧 산업시대의 상징인 검은 굴뚝의 연기로 세상을 메우고 있다. 물론 지금의 인터넷세상도 이러한 검은 굴뚝의 욕망에 일치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스피노자가 그 이론의 맹점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하다고 본다.
<<참고문헌>>
『서양철학사』스텔링 p.램프레히트저 김태길, 윤명로, 최명관 을유문화사 1998
『욕망의 통제와 탈주』 전갑경저 한길사 1999
『서양철학사』 사무엘 e. 스템프저 이광래 옮김 종로서적출판사 1998
『서양철학사』 요한내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1992
『야만적 별종』안토니오 네그리저 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7
『스피노자의 철학』들뢰즈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7.24
  • 저작시기2006.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9861
청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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