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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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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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히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중앙 대간선도로가 있었는데 그 넓이가 110m에 달하였다. 이 도시는 배수로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수도성의 평면설계는 당시 발해인들의 도시건설 설계의 높은 지식을 보여 주는 것이며 대발해국의 수도다운 위용을 보여준 것이었다.
궁성 안에는 30여개의 건축유지들이 있는데, 그 중 중심이 되는 것은 5개의 궁전이다. 목조건축으로 된 이 궁전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유적, 유물들로 큰 규모와 호화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발해의 도성, 왕궁, 성, 유적들로는 상경 용천부 유적 이외에 오동성 유적, 팔련성 유적, 서고성자 유적 및 산성 유적들이 있다.
발해건축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돈화 육정산, 화용현 북대, 영안현 삼령둔 남양 및 대주둔, 임구현 두도하자 등의 무덤떼가 있다. 이 발해고분들은 무덤 주인공의 지위, 재산 등의 차이에 따라 그 규모와 정도가 다르나, 기본형식은 옛 고구려 고분의 무덤구조를 계승한 돌간흙무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발해고분들 중에는 돈화육정산의 정혜공주묘와 삼령둔무덤이 있다.
정혜공주묘는 고구려 고분의 기본형식에 의하여 축조된 것으로서 그 규모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2.7m와 2.9m, 높이 1.5m 이상의 4면 벽 위에 1~2단의 평형고임과 다시 그 위로 2단 정도의 3각곡임을 하고, 맨 위는 천장돌을 덮은 무덤간이 있고, 이 무덤간 남쪽으로는 해당한 너비와 길이의 무덤안길 및 무덤바깥길이 달려 있는 돌간흙무덤이다. 이 묘 속에서는 정교한 묘비를 비롯하여 각종 호화로운 장식품들과 일용도구 등 부장품들이 나왔다.
발해건축의 우수한 다른 한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불교사찰의 돌등 건축이 있다.
발해는 조각예술도 발전하여 돌등에 새겨진 조각 이외에도 많은 불상, 사자조각 및 기타 유물들이 있다. 부처조각에는 돌부처, 쇠부처, 도금한 놋부처, 금부처 등이 있다. 돌사자조각으로 대표적인 것은 정혜공주묘에서 나온 두 개의 돌사자이다.
미술공예의 유산으로는 도자기, 기와, 벽돌, 각종 금속공예품, 옥돌공예품 등이 있다. 발해자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보통 도자기들과 유약을 발라 더 값지게 만든 도자기들이 있는데 매우 다양하다. 발해의 기와는 고구려의 기와제조기술과 예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서 암키와, 수키와, 각종 장식기와 등이 있다.
당나라가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독립국가로 인정받은 발해.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발해이다. 통일신라보다 수명이 몇 십년 짧았지만 그 영토가
4~5배에 달했다.
삼국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고 알고 있었지만 발해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자료도 부족하고 관심이 없었다. 이번 조사를 통하여서 발해에 대해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발해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사실을 더욱더 인정하고 믿게 되었다.
<참고문헌>
고준환,「반만년 대륙민족의 영광사! 하나되는 한국사」, 서울:한국교육진흥재단, 2005.7.10
사회과학원자력사연구소,「발해 및 후기 신라사」,서울: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5.10

키워드

발해,   건국,   멸망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6.11.12
  • 저작시기2006.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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