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단의 성립과 문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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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학사단의 성립과 문예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신청년》과 《신조》

2. 문학연구회와《소설월간》

3. 창조사와《창조계간》

4. 어사사와《어사》

5.《현대평론》

6. 신월사와《시전》 《신월》

7. 창조사 제2기와《홍수》 《창조월간》

8. 미명사

9. 망원사와 광표사

10. 천초사와 심종사

11. 낙타초사

12. 미쇄사

본문내용

기에 발행되지는 못하는 등 난항을 거듭했다. 사해에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욱달부였다. 그는 혁명의 근원지에 큰 뜻을 품고 갔으나 정치의 추악함을 보고는 실망하여 1926년 말에 상해에 돌아와서 창조사를 관장했다. 그가 돌아와서 본 창조사는 그가 떠났을 때와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 운영도 문란했거니와 동인간의 갈등도 심화되어 그 나름대로 정리하였으나 창조사는 이미 사양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욱달부는 1927년 8월에 창조사에 대한 실망과 동인들과는 사상적 갈등을 느끼고는 영원히 창조사를 떠나게 되고,《홍수》는 9월에 정간된다.
1927년 4월 북벌 중에 국민당 좌 . 우파가 분열하여 좌파의 무한정부와 우파의 남경정부가 각기 독립하자 광동에 있거나 전선에서 통일혁명에 참가하고 있던 지식인들이 실망을 안고는 속속 상해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1927년 말 창조사 제1기 동인들도 모두 상해에 돌아왔다. 이들은 통일혁명의 좌절을 문예운동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다. 곽말약은 창조사를 중심으로 한 문단통일을 성취하고자 동인들과 협의하여 노신을 영입하여《창조주보》를 복간하고자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성방오의 반대로《창조주보》를 복간하고자 하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창조사는 다시 적막하여졌으나《창조월간》만이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이때가 1927년 말이니 이때 까지를 창조사 제2기라고 한다.
8. 미명사
1924년에 노신은 북경의 북신서국으로부터 두 '총서'의 편집을 의뢰받으니 '오합총서'와 '미명총서' 이다. '오합총서'는 창작만을 수록하고. '미명총서'는 번역만을 수록하는 총서였다. 당시 번역작품의 판매가 좋지 않았으나, 노신은 외국문학 번역 소개의 필요성을 느껴 1925년 9월에 미명사를 조직하고 번역과 창작을 병행했다. 이들은 특히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번역했는데, 고골리 . 도스토예프스키 . 안드레예프 등의 작품과 <러시아문예논전>, <문학과 혁명> 등의 문예비평이 있다.
9. 망원사와 광표사
1925년 4월에 노신은 북경에서 그를 추종하는 천년작가들인 위희원 . 고가 . 위총무 등과 함께 망원사를 조직하고《망원주간》을 창간했다. 당시 노신은《어사》에 몸담고 있었으나, 동생인 주작인이 편집장으로 있어, 그의 추종자들의 작품을 뜻대로 게재하는 데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노신 형제는 1923년 7월 이후 가정문제로 감정이 좋지 않았으나《어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하는 사이여서 노신으로서는 매우 불편을 느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청년작가들과 함께 그들만의 자유로운 조직을 따로 결성했던 것 같다. 이 주간지는 처음에《경보》에서 발행하다가 제5기부터는 반월간으로 개편하고《경보》에서 떠나 미명사에서 발행했다.
1926년 여름에 노신이 북경을 떠나면서부터 출판사 내부에 동이간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즉 위희원과 고장홍사이에 불과가 발생하여 고장홍 등이 망원을 이탈하여 따로 광표사를 조직하더니 1926년 10월에 상해에서《광표주간》을 창간했다. 이들은 '니체 사상'을 선전하며 문단에서의 광표 운동을 전개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 망원사와 노신에게 공격을 서슴치 않다 얼마가지 않아 정간되었다.
10. 천초사와 심종사
1924년 상해에서 천초사가 조직되었는데《천초계간》을 창간하여 4기까지 출간하더니, 1925년 10월에는 다시 북경에서 심종사를 조직하고는《심종주간》을 창간하여 4기까지 출간하였고, 1926년에는 또《심종반월간》을 창간하여 12기까지 출간했다. 이들은 주로 독일문학 소개에 힘썼으며《심종문예총서》도 4권이나 출간했다. 당시 심종사는 매우 성실한 조직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1932년에 정간되었다.
11. 낙타초사
1927년에《어사》가 북양정부으 핍박으로 정간되었다가, 1928년 1월에 상해에서 복간되었다. 그러나 발기인의 한 사람인 주작인은 당시 북경을 떠나지 않고 잔류한 일부 문인들과 낙타초사를 조직하고《낙타초반월간》을 창간했다.《어사》와 유사하게 잡문을 위주로 한 고사한 문예지로 알려졌다. 주요작가로는 주작인 외에 폐명 . 서조정 등이 있었다.
12. 미쇄사
1923년 상해에서 호산원 등에 의하여 미쇄사가 조직되고《미쇄월간》을 창간했다. 이들은 '무목적, 무예술관, 부시론, 부비평'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어떠한 주의나 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문학창작만을 위한 모임이라고 했으나 겨우 6기로 정간되었으며 몇 권의 총서를 남겼다.
♠ 참 고 문 헌 ♠
《중국현대문학사》 , 김시준 , 지식산업사 , 1992
《중국현대문학개론》 , 정수국 , 산아사 , 1998
  • 가격2,5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12.06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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