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기-택견아리랑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야를 만드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두여워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사이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여 그를 신하로 삼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又數傳 而至慈烏支桓雄 神勇冠絶 其頭額銅鐵 能作大霧 造九冶以採  鑄鐵作兵 造飛石迫擊之機 天下大畏之 公尊爲天帝子蚩尤 夫蚩尤者 俗言雷雨大作 山河改換之 義也 蚩尤天王 見神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進據淮岱之間 及軒轅之立也 直 赴 鹿之野 擒軒轅而臣之 後遣吳將軍 西擊高辛 有功
⑨ (진역유기에서 말한다…)천주로서 삼신에 제사하고 병주로서 치우를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 만물의 조상이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으로서 용강의 조라할지니,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도 만세 도술의 조종으로서 바람과 비를 부르고 모든 귀신들을 부른다. 이로써 태시의 세계에서부터 항상 천하 전쟁의 주가 되었다…유방은 동이 계통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병사를 풍패에서 일으켰는데 곧 풍패의 풍속은 치우에게 제를 지내므로 나라도 역시 그 풍속을 따라 치우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하여 혼고하고 깃발을 들고 마침내 10월에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을 평정하고 즉위하여 한왕이 되었던 바 이로 인해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하고 이것이 진나라의 정월 초하루를 빼앗는 일이긴 하나, 역시 동황태일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를 공경하여 제사지낸 때문이라 할 것이다. 뒤에 4년만에 지나라 땅이 이미 평정되닌 축관에게 명하여 치우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다. 그가 치우를 존경하기 이와 같았다.
天主 祠三神 兵主 祠蚩尤 三神 爲天地萬物之祖也 蚩尤 爲萬古武神勇强之祖 作 大霧 驅水火 又爲萬世道術之宗 喚風雨 招萬神 是以 大始之世 恒爲天下戎事之主… 劉邦 雖非夷系 而起兵於豊沛 則風沛之俗 祠蚩尤也 故邦亦因俗以祠蚩尤 而 鼓旗 遂以十月 至 上 與諸侯平咸陽而立爲漢王 則因以十月爲歲首 此雖襲秦正朔 而亦因 崇敬東皇太一 敬祠蚩尤也 後四歲 秦域己定 則令祝官 立蚩尤之祠於長安 其敬蚩尤 之篤 如此
⑩ 진나라의 <천문지>는 "치우기는 고리별 혜성과 비슷하여 뒤가 꼬부라져서 깃발을 닮았다. 깃발이 보이는 곳 바로 밑에 병란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치우천왕이 승천하여 별이 되신 때문이다. 또 <통지> 씨족략엔 "치씨는 치우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힐은 고신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산동의 회북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옛날 여상도 역시 치우의 후손이기 때문에 역시 성은 강이다. 대개 치우천왕이 강수에 살면서 얻은 자식들은 모두 강씨라 하였다.
晉天文志 蚩尤旗 類慧而後曲象旗 所見之方下有兵云 則乃蚩尤天王 上爲列宿也 通志氏族略 蚩氏蚩尤之後 或曰蒼 與高辛 亦盖蚩尤氏之苗裔 生大棘城 而轉徙於山 東淮北者也 盖蚩尤天王之英風雄烈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昔呂尙 亦蚩尤氏之後 故亦姓姜 盖蚩尤 居姜水而有子者 皆爲姜氏也
<삼한관경본기 제4>
⑪ 마한세가 상
계속하여 치우씨가 있었는데 구야를 만들어서,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들고, 또 돌을 날리는 기계도 만들었다. 이에 천하는 감히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때에 헌구가 굴복치 않으니 치우는 몸소 군대를 인솔하고 출동하여 이를 크게 정벌코자하여 크게 탁록에서 싸웠다. 탁록은 지금 산서성의 대동부이다. 싸움이 있기 전에 탁록이 격문을 만들어 81종당의 대인을 소환했다. 먼저 치우의 형상을 그려 분포하더니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게 하고는 가로대,
"그대 헌구야! 짐으 l고함을 밝히 들으렷다. 해의 아들이라 함은 오직 짐 한 사람뿐으로 만세를 위하고 공동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마음을 닦는 맹세를 짓노라. 그대 헌구여! 우리의 삼신일체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윤구서의 행을 게을리하였으니 삼신은 오래도록 그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짐 한 사람에게 며아여 삼신의 토벌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그대일찌감치 마음을 잡아서 행도을 고칠 것이다. 자성은 너에게서 찾을 것이니 그대의 머리 속에 있음이로다.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고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그 목숨이 제 목숨이 아닐 것이다. 네 어찌 두렵지 않은가?"라고 했다. 이에 헌구가 평정되어 복종하니 천하는 우리를 기둥처럼 여기더라.
繼有蚩尤氏 作造九冶以採 鑄鐵作兵 又制飛石迫擊之機 天下 莫敢讐之 時 軒丘 不服 蚩尤 躬率往征之 大戰於 鹿  鹿 今山西大同府也 將戰 作 鹿檄 乃召八十一 宗黨大人 先以頒示蚩尤形像 具命誓而告之 蚩尤天王曰 爾軒丘 明聽朕誥 日之有子 惟朕一人 爲萬世爲公之義 作人間洗心之誓 爾軒丘 侮我三神一體之原理 怠棄三倫九 誓之行 三神 久厭其穢 命朕一人 行三神之討 爾早己洗心改行 自性求子 降在爾腦 若 不順命 天人咸怒 其命之不常 爾無可懼乎哉 於是 軒丘 乃平服 天下 宗我焉
⑫ 번한세가 상
치우천왕은 서쪽으로 탁예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를 평정하셨다. 산을 뚫고 길을 내시니 땅 넓이는 만리에 이르더라. 단군왕검은 제요도당과 나란히 군림했다…이에 단군왕검은 치우의 후손 가운데 지모가 뛰어나게 세상에 소문난 자를 골라 번한이라 하고 부(府)를 험독에 세우게 하였다. 지금도 역시 왕검성이라고 한다. 치두남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게 세상에 알려졌다. 단군은 곧 불러 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시고는 곧 그를 번한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蚩尤天王西征 芮 南平淮岱 披山通道 地廣萬里 至檀君王儉 與唐堯幷世…於是 檀君王儉 擇蚩尤後孫中有智謀勇力者爲番韓 立府險瀆 今亦稱王儉城也 蚩頭男 蚩尤 天王之後也 以勇智著聞於世 檀君乃召見而奇之 卽拜爲番韓 兼帶監虞之政
권의 단군에 관한 기록이 특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김경수 역주본에서 발췌)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7.05.05
  • 저작시기2007.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803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