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도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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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답사내용소개
Ⅰ-1 답 사 주 제
Ⅰ-2 답 사 목 적
Ⅰ-3 답 사 경 로 및 일 정
Ⅰ-4 답사간활동
Ⅰ-5 답 사 비 용

Ⅱ 답 사 결 과 보 고
Ⅱ-1 답사지역소개
Ⅱ-2 답사지소개
▷공 산 성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낙화암/고란사
▷정림사지
▷국립부여박물관
▷궁남지
Ⅱ-3 답사후기

본문내용

인 거 같다. 최고!! 공주 시내에 도착해 김밥천국 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발품을 판 고생덕분인지 숙소에서 친목을 다질 수 있는 회식거리를 마음껏 샀다. 이 과정에서 모두들 불꽃이 튀었다.
치킨과 족발의 전쟁 결과는 치킨의 승리 이었다.
그 후에 버스에 올라 계룡산 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시각은 밤 9시. 교수님의 모습을 뵈니 너무 좋았다. 집나간 아이가 고생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올 때 이런 느낌 이였을 것이다. 아마도..
짐을 정리하고, 교수님과의 미팅을 한 후에 장시간에 조 모임을 갖은 후, 더욱 끈끈한 정을 다지기위해 뒷산과 갑사 입구로 담력훈련을 하여 4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우리 조는 거의 밤을 샜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5시에 일어나 둘째날의 여정을 밝혔다. 정말 대단한 우리 1조!!
아침은 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첫차를 타고 공주 시내로 이동했다.(오전 6시 50분 차)
공주시내에서 10여분을 걸어 부여로 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고, 7시40분 부여행 버스에 올라탔다. 지친 우리는 부여에 도착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단잠을 잤다. 8시 30분쯤 부여터미널에 도착해, 혜진이가 설명을 맡은 낙화암과 진미와 윤희가 해설을 하기로 한 고란사로 향했다. 우리가 낙화암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가 조금 되기 전, 무료 입장을 노리고 무거운 다리를 재촉해 빨리 이동했지만 매표소 아저씨의 따가운 눈초리로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했다.하지만 그 값이 아깝지 않았다.
낙화암과 고란 사로 향하는 길은 산책로 같이 양옆으로는 많은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지역 주민에게는 산책 시간을 정해 입장료를 받지 않고, 개방한다고 한다.
그리고, 곳곳에 공중 화장실을 배치해 두고 있었고, 청결이나 시설 관리에 있어서도 여러 번 손길이 닿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600m 정도를 올라가다 보니 여러 가지 물품들을 파는 매점(?)이 4-5 곳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음..여기에서는 아쉬움 점들을 몇 가지 발견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관광지 기념품 판매의 최대의 문제점인 아무거나 상품이 즐비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낙화암을 나타내는 기념품들인지 놀이동산인지..낙화암과 고란사를 기념 할 수 있는 기념품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 이였다.
그리고 이 곳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매개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곳곳에 문화적 자원을 설명한 비석은 외국 관광객들을 충분히 이해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았다. 또한, 삼천 궁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다는 고란사는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는 유적들이 너무나 부족했고, 이곳저곳에 거미줄과 안전시설의 먼지, 절 자체의 시설 부패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런 점들을 보완한다면,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좋은 이미지와 백제의 한 단락을 알려 줄 수 있는 매력적인 문화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화암과 고란사는 전반적으로 매력있는 문화적 관광지였다. 시설이나 관리, 기념품 등에 있어서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문화적 의미와 자연적인 요소는 감탄을 자아냈다. 낙화암의 정자 위에서 바라본 금강(백마강)은 가슴이 확 뚫릴 정도로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낙화암과 고란사 답사를 마치고, 정림사지로 이동 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햇빛이 따가웠다. 정림사지로 이동하는 경로에 시내에 있어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승호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돈을 조금씩 모아 케익을 준비하여 가볍게 파티를 하였다.
그 후 우리는 15분 정도를 걸어 정림사지에 도착했다. 정림사지는 사적 제301호. 1942년 발굴조사 때 대평 팔년 무진(大平八年戊辰) 정림사대장당초(定林寺大藏當草)라고 쓰여져 있는 고려 초기의 기와 명문(銘文)이 발견되어 정림사라고 부르며, 오층석탑은 보존이 잘 되 있어서 세월이 붙어 나지 않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리고 정림사지 안에 꽃과 나무 등을 많이 심고, 공중 화장실과 쉴 수 있는 벤치 등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석탑에서 주는 웅장한 멋과 함께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음으로는 부여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백제 문화의 유물과 유적을 감상했다. 백제 박물관의 인상 깊었던 점은 공주 박물관도 물론 그러했지만, 그곳에 비해 박물관 외부의 공간을 많이 활용했다는 점이였다. 나무가 있는 곳에 공간을 만들어 상당수의 석탑과 비문 등을 전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무와 어울려 멋진 사진 촬영 장소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 백제 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부여 박물관을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 답사지 인 궁남지로 출발했다.
궁남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실망했던 점은 관광 안내소라고 적혀있는 작은 부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버려진 듯..그리고 그 주의에는 궁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연 환경들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궁남지 는 백제의 별궁(別宮) 으로, 인공호수 안에 자리잡은 정자가 그곳의 운치를 더 했다. 그곳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정말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로써 궁남지를 마지막으로 우리의 답사일정을 모두 마쳤다.
찬란한 백제 문화 유산을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백제에 대해 한 단락이나마 알 수 있었던 뜻 깊은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공주와 부여를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이곳이 백제의 문화역사 관광지로서의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뛰어난 그런 문화 유적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울려 그 매력이 한층 더 돋보였다. 하지만 관광지의 시설이라든지 접근성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이러한 매력을 다소 잦아들게 만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보다 주의 깊은 시설 관리와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국제적인 문화 역사적 관광지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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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13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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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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