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삶,업적,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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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후쿠자와 유키치
1-1. 개인사.
1-2. 일본의 시대적 배경.

2.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
2-1. 후쿠자와의 대외인식
2-2. 후쿠자와와 유교
2-3. 정치관
2-4. 문명개화론
2-5. 조선 정한론
2-6. 탈아론

3. 후쿠자와 유키치의 주요저서및 갑신정변의 실패
3-1.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 문명론의 개략」
3-2. 갑신정변의 실패

4. 쟁점- 근대화의 선구자? or 제국주의의 대변자?

5. 결론

본문내용

도자로서의 위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보여준 그의 문명개화는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수단적 의미를 지녔다는 점, 유럽열강질서에의 편입을 주장했던 그가 유럽이 아시아를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같이 조선과 청을 정복과 교화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국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선정략론은 조선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과 안보를 추구, 조선 근대화의 특수성을 무시, 동아시아에서의 패권확보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은 일본 제국주의의 대변자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즉 일본인들에게는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요 교육자지만, 실로 후쿠자와는 전형적인 두 얼굴의 일본인이라 본다. 즉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아시아와의 연대는 다테마에(健前, 겉으로만 앞세우는 명분)였고, 제국주의적 팽창욕을 마음속 깊이 감추고 있던 혼네(本音, 속마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과 현 시대 일본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5년 2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4월 6일의 우익 교과서의 승인, 미국이라는 패권을 통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모습에 그의 ‘탈아론’의 사상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번영시킬 여유는 없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여, 중국과 조선을 접해야 한다. 이웃 나라라고 해서 사정을 봐줄 수 없다. 」 라는 그의 주장은 “현재 일본의 의식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이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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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5.13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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