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정해지면 곧바로 현장 취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자료를 모아 취재의 밑그림을 그린다. 워낙 정보량이 많다보니, 취재 이전부터 취재 결과를 예상하고 취재의 구성안을 작성한 후 그것을 따라가는 취재가 가능해 진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인터넷 여론이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이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의 제작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온전히 제작진의 권한이자 책임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잦아졌다. 각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다. 제작진들은 방송이 되기 전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을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이슈의 경우 더욱 그랬는데, 결국 제작진은 방송 후 잡음을 줄이기 위해 예정에 없던 한쪽 편의 의견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기도 한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 제작진 이외의 다른 변수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인데, 이는 인터넷 발달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제작 단계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변화는 정보 독점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이다. 즉 이제는 제작진보다 소재와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시청자가 생겨났다. 인터넷의 영향이다. 많은 제작진은 이점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취재 방식의 변화가 시작됐는데, 제작진은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시청자를 의식해, 더욱 깊이 있는 취재에 공을 들이게 되고 인터넷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현장성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최근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대의를 살리는 딱딱한 주장보다는 사례를 통한 감성적인 접근에 더욱 치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아예 거대담론을 논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데, 두 경우 모두 더 이상 새로운 정보로는 한계를 느끼게 된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자신만의 시청자 소구력을 갖추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작 과정에서 인터넷 활용이 늘어나다 보니,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본연의 역할인 여론을 만들어 내는 기능이 많이 약화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여론을 따라가는 여론 전달자의 역할에 치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인데, 이 역시 인터넷 발달로 인한 제작 과정의 커다란 변화로 짚어 볼 수 있었다. 제작 단계에서 시청자 의견이 다양하게 반영됨으로써, 공정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커졌다. 반면에 메시지 전달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제작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청자들이 한편으론 견제 세력이 되지만, 또 한편으론 제작진에게 압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제작 후 단계에 인터넷이 미친 영향은 시청자가 반론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각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통해서인데, 제작진은 이러한 반론을 의식해 제작 과정에서부터 필요한 조치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반론이 나오지 않도록 취재를 보강하거나 반대 입장을 반영해 주는 등의 조치이다. 과거에 시청률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던 제작 후 단계가, 이제는 시청자 주권이 보장되는 단계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제작 과정의 변화를 종합해 볼 때, 이미 인터넷은 TV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가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전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부분의 제작진이 인터넷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이러한 변화는 더 심화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더 현장성이 강화되고 감성적인 접근을 강조하게 되며, 특히 정보력에 있어서 시청자들의 수준을 능가하기 위해 보다 분석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인터넷상의 여론을 일반 시청자의 여론으로 착각하는 현실에 대해, 제작진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인터넷 발달에 따라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는 계층 즉 인터넷 활용도가 떨어지는 계층에 대한 배려가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인터넷 활용이 늘어날수록 정보의 양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해 질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인터넷 여론의 힘 역시 증대 될 것이다. 이러한 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보다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취사 선택 할 수 있는 제작진의 통찰력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제작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이상 사회적으로 건강한 의제를 설정해 내는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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