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변혁이라는 과제에 놓여 있었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변화 속에서 그 성격과 내용은 달리 하지만 저변에 깔린 궁극적인 시대정신은 도도히 맥을 이어왔다. 유럽의 경우만 보더라도 60년대를 흔들었던 학생운동은 70년대 이후 신사회 운동의 실질적인 동력으로 계승되어 갔으며, 미국의 70년대 저항 정신도 첨단 하이테크 시대를 맞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롭 넬슨과 존 코완의 lead or leave로 대표되는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전자 민주주의 압력단체 운동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신세대는 기성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아닌 80년대에 대한 거부와 무시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80년대의 문제의식은 개인의 가치와 욕구 실현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인가? 80년대는 단지 아득한 옛날 신화와 전설 속의 이야기로 박제화되어 버렸을 뿐이다. 이제 대학은 비판과 저항의 기능을 상실하고 취업 준비장으로 변모해 버렸다. 한때 학원을 난무하던 변혁과 해방이라는 실천적 외침들은 한낱 상업 광고의 카피로 전락하여 비참한 여생을 맞이하고 있다.
더욱이 신세대의 문화는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할 기성세대의 풍조를 오히려 모방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오렌지족과 박한상 사건에서 우리는 물질 숭배주의의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하고 있으며, 프라이드가 무엄하게도 그렌저 앞을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한 폭행 사건을 통해 노학연대를 외치던 80년대의 서글픈 종말과 봉건적 카스트 제도의 화려한 부활의 징조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90년대의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시대정신은 아련한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시대정신의 실종이 개인화로 이어지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 아닐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90년대라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희망적 대안의 맹아를 찾을 수 있다. 신세대들은 구조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개인이라는 차원으로 관심의 초점을 바꿔 놓았다.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80년대의 구조적 변혁 지향이라는 과제 속에서 유보시켜야만 했던 개인의 욕망 해소와 자유의 향유라는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었다. 저항의 장은 정치에서 다시 문화로 옮겨갔지만 저항의 대상은 70년대의 그것과는 달리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기존의 규격화된 사회,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규격화된 사회, 문화에 대한 해체와 거부, 그리고 이를 통한 개인의 재발견은 분명 진보적 몸짓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세대들의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사회적 건강성을 수립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 신세대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첫째, 신세대들은 내부 지향성을 극복해야 한다. 과거의 시대정신은 확산성을 띠었다. 80년대의 변혁 세력들은 노학연대와 농활 등을 통해서, 그리고 이데올로기 투쟁과 선전 작업을 통해서 자신들의 가치를 다수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실천하려 했다. 그러나 신세대의 자유와 합리성 추구는 개인적 일상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질 뿐, 외부의 구조적 억압과 제도적 불합리에는 침묵하고 있다. 압구정동과 록카페는 기성세대는 물론이요 경제, 사회적 지위가 다른 동년배들에게 조차도 자유로운 출입이 용납되지 않는 그들만의 해방구이다.
이곳은 다른 한편 그곳만의 해방구이기도 하다. 압구정동과 록카페를 벗어나면 일시적으로 만끽했던 해방감은 사라지고 다시 억압적인 기성의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신세대의 자유와 해방은 가상의 현실 속에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뿐이다. 아니, 과연 이곳이 진정한 해방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시뮬레이션된 해방구는 오히려 상업적 논리에 의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신종 문화산업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 강현두(1987), 한국의 대중문화, 나남
◇ 강유성, 특집 여성 소비자의 재발견, 사보 대홍기획
◇ 남수경(2000), TV광고에 대한 신세대 소비자의 태도와 구매행동에 관한 연구, 동아대 언론홍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서동진 외(1994), 신세대론 혼돈과 질서, 현실문화연구
◇ 이정수(1996), 신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 TV광고의 분석, 부산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유미(1997), 신세대 생활양식에 따른 DM의 표현전략에 관한 연구, 숙명여대 디자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조용수(1996), 한국의 신세대 혁명, LG경제연구원
◇ 조용수(1996), 신세대를 알면 21세기가 보인다,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