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모르고, 그렇게도 자존심이 없는 존재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정치가 나아갈 길 즉, 사람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진정한 정치의 목적에 대한 확신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며, 정은 어디까지나 正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은 정이기보다 오히려 정은 곧 속임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손자가 얘기한 “무릇 전쟁이란 속임수이다”를 정치로 오해하고,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는 유덕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단지 유덕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어찌 전쟁일 수 있는가.
정치야말로 속임수가 아닌 덕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요. 거짓 아닌 정으로 바로 잡아 가는 것, 즉 ‘정자 정야’인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수단을 달리하는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거침없이 선언하였다. 그는 군인이니까, 병은 속임수이므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칸트와 괴테를 낳고 그 정교한 철학을 완성한 풍토에서 어떻게 그런 논리가 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 서구의 근대합리주의가 왜 ‘힘’의 우위, 힘을 숭배하는 사유구조를 낳게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치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살벌한 힘의 논리, 힘의 법칙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 정체는 무엇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 그 사상적 배경은 이분법적 사고에 있다고 보여진다. 정은 분명히 정일 수밖에 없는 너무도 분명한 논리, 서양이 그렇게도 신봉하는 이성을 가지고도 정치에서만은 정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300년간 근대문명을 이끌어 온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감히 극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중세 암흑기 철학세계란 어디까지나 신의 은총으로 사람은 존재할 수 있는 존재였다. 범신론을 주장하던 브루노는 화형을 당하고, 진리를 말했던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아야 하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데 물리학자들이 제시한 진리체계가, 예를 들어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어야 하는 그야말로 천지가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두고, 그 당시의 학자들은 시대적 요구인 합리적, 과학적,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기존질서인 신학적 세계관에 대항할 것인가? 그들은 어느 것을 선뜻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신은 무한한 실체로서 그 존재를 인정해 버리고, 물리학은 물리학대로 도망할 수 있는 길을 터 줌으로써, 양자를 동시에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지식인, 정치가, 철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요, 그러므로 이원론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는 주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더불어 근대문명의 길을 열어 주었고, 특히 근대과학을 완성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후로 전개된 과학만능주의가 물질만능주의를 불렀고, 당연한 귀결로 생명경시 현상, 인간소외현상을 낳게 된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과학이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캐기 시작하자 과학적이 아니면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모든 분야에 과학적 방법, 과학적 접근이 군림하게 되었고, 심지어 정치학에서조차 행태주의 등의 발달을 보게 된다. 생명과 우주가 무시되는 마당에 어떻게 가치가 도덕이 설 수 있을 것인가. 가치와 덕이 무시되는 세상에 어떻게 정의가 설 수 있을 것인가. 또 정의가 무시되는 곳에 어떻게 바른 정치가 설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분법적 사고 관은 본의 아니게 패권정치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Ⅵ. 정치권력에 대한 시사점
모든 경제에서 생산과 이윤은 권력의 3대 원천-폭력부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정보화시대로 변화됨에 따라 폭력은 점차 법률로 전환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자본과 통화는 지식으로 변환되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도 변화하여 더욱 더 기호조직에 의존하도록 되어가고 있다. 자본통화 및 노동이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여감에 따라 전체 경제의 기반이 지금 변혁을 겪고 있다. 경제는 지금 공장 굴뚝 시대를 지배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초 기호경제로 이행해 가고 있다. 또한 지식은 원자재노동시간장소 및 자본의 필요를 감소시켜주기 때문에 지금 선진경제의 중심적 자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지식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처에서 정보전쟁(info-war)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등장은 새로운 권력이동을 원활하게 해주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들 타고 보급되는 여러 가지 자원 중에서 정보가 가장 유동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유동성은 식량에너지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이 날로 더욱 기호교환에 의존하는 경제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경제체제는 무엇보다도 인체의 신경계통을 닮은 것으로서 지금까지 아무도 이것을 운영할 일관성 있는 규칙을 작성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 경제체제를 외적 지능이라 정의했다. 이전에 없었던 이런 외적지능의 등장은 사회 전반에 대해 종전의 통신혁명이 제기했던 문제들과는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외적지능이 생활방식의 개선을 가져오느냐의 여부는 그 전체적인 발전을 이끌어갈 사회적정치적 지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적 시스템과 정치적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보가 많은 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수평적인 형태의 이동만 생각할 수 있는 데 사회와 정치구도가 수직적으로 구성되어있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정보 또한 수직적인 체제로 변모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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