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직업인으로서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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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시습-직업인으로서의 업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 대 기

2. 김시습 연보와 작품

3.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본문내용

하나 같이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대부분이 고전소설에 종결부가 행복한 결말로 종결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주인공이 세상에 대해 던지는 것은 운명에 대한 순서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그릇된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말의 표현이다. 표현 형식에 있어서 유려한 문어체 문장이나 시에 의해 애상이 서정적으로 미화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구성 또한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시가 다량 삽입되어 인물의 심리와 분위기 표현에 독특한 효과를 낮고 있다. 시의 다량삽입은 서정시가 국문학을 주도하던 조선전기의 문학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인공이 대체로 작가자신을 본보기로 하여 만들어진 인물이고 따라서 자전적 성격을 지닌다. 또 많은 사건이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본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1472
38세
친구의 권유로 상경하여, 서울의 성 동쪽, 수락산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살다. 그곳에 폭천정사(瀑泉精舍)를 세우다
1475
41세
『심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짓다. 이후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大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등 불교 관계 저술에 몰두하다
『심현담요해(十玄談要解)』
曹洞宗 계통의 禪師 同安常察의 저술인 十玄談에 대한 淸凉文益의 淸凉註를 토대로 金時習이 자신의 註인 悅卿註를 첨가해 편찬한 저술.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大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
1481
47세
환속하여 안씨(安氏)의 딸과 재혼하다(안씨와는 이내 사별함).
1483
49세
가정을 회복한 이후 주변에서 벼슬하기를 권하나 응하지 않고 세운(世運)이 쇠함을 비분한 나머지 더욱 기행과 광태를 일삼다가, 이 해에 다시 출가하여 관동으로 떠나다. 춘천과 설악산 등지에 족적이 주로 멈추었던 바, 몸소 산전을 개간하다.
1493
59세
3월 모일에 충청도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졸(卒)하다.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집이다. 원래는 작품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현재 5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판본(板本)도 김시습 자신이 돌방에 감추어서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고 한 만큼 간본(刊本)은 없고 필사본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것을 일본에서 두 차례 번각(飜刻)하였고, 그 중 1884년에 나온 일본판(大塚本)을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1927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국내에 알려졌다.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경주남산(慶州 南山)의 용장사(茸長寺)에서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고, 삼층석탑, 마애석불, 석불대좌 등의 유물만이 남아있다. 이 곳에서 김시습은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저술하였다.
남아있는 5편의 단편소설은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이다. 각 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들이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이 서로 만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 사는 가난한 노총각 양생(梁生)이 왜구의 침입 때 정절을 지키다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처녀가 떠난 후 장가를 가지 않고 山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생규장전"은 개성에 사는 이생(李生)과 최녀(崔女)가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부부가 되었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崔女가 죽음을 당한 후 환신(換神)하여 李生과 부부생활을 한다. 崔女는 다시 떠나고 李生 또한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취유부벽정기"는 송도에 사는 홍생(洪生)이 평양 부벽정에서 취해 놀다가 箕子朝鮮 마지막 王의 딸인 기씨녀(箕氏女)를 만나, 나라가 망한 사연을 듣고 울분과 감회를 나누다 헤어진 후 선계(仙界)로 간다는 내용이다.
"남염부주지"는 미신과 불교를 배척하는 경주의 박생(朴生)이 꿈 속에서 염라국에 가, 염왕과 토론하고 돌아온 후 염라국의 왕이 되어 세상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용궁부연록"은 송도의 한생(韓生)이 龍王의 초대로 龍宮에 가서 詩를 짓는 재능을 발휘하고 돌아온 후 세상의 名利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각 편들은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인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첫째, 崔女로 대표되는 굳건한 기상이나 의지를 지닌 한국적인 인물을 청조하였다는 점. 둘째, 공간적 배경을 조선으로 함으로써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점. 셋째,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을 통하여 작가의 기구한 처지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 넷째, 愛民的 왕도정치 사상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 등은 작가의 창작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儒家的 선비의 입장을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교적 因緣觀이 투영된 만남을 통해서 결국은 죽음이나 不知所終 (부지소종 .. 어디에서 일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의 道家的인 모습으로 귀결되고 있는 공통점은 儒, 佛, 道 3敎를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하였던 작가의 철학체계가 잘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소설의 발달 과정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수이전(殊異傳)의 "최치원 이야기", 보한집(補閑集)의 " 이인보(李仁甫) 이야기" 같은 명혼설화(冥婚說話)와 삼국유사의 "調信 이야기" 같은 몽유설화를 계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화양식을 확립시켰고, 그 이후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전기문학인 도기보코(伽碑子)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김시습이 죽은 지 18년 후 中宗의 명을 받고 이자(李藉), 박상(朴祥), 윤춘년(尹春年)등이 유고를 모아 간행하였다.23권 6책으로 23권 중 15권이 詩集인데, 詩는 세간과 궁궐, 자연 등의 모든 분야에 걸쳐 생로병사, 성명이기(性命理氣), 음양유현(陰陽幽顯)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가운데 遊關西錄, 遊關東錄, 遊湖南錄, 遊金烏錄과 같은 記行詩는 울분을 가라 앉히기 위하여 천하를 돌아 다니던 청년시절에 쓴 것인데, 특히 관서록에는 강개시(慷慨詩)가 많다. "관동일록"은 김시습의 나이 49세 때에 농사나 짓고 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 지은 것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뛰어난 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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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21
  • 저작시기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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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6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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