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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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십자군의개념

2. 십자군의 배경

3. 십자군의 동기

4. 십자군의 구조와 경과
(1) 초기십자군(11세기말~12세기말)
(2) 중기십자군(13세기 전반)
(3) 말기십자군(13세기 후반)
(4) 이후의 십자군(14~16세기)

5. 실패원인 분석

6. 십자군의 중지에 대한 이론

7. 세계사적 의의

8. 십자군 전쟁의 교훈

【참고 문헌】

본문내용

기사들의 야욕은 성전이란 이름아래 수세기 동안의 학살과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만다. 결국 이것은 겉만 멋지게 포장된 일련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로 인하여 문명의 접촉으로 많은 변화를 초래하게 되어지지만 그 피해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관점중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폭력적인 유태인 박해의 시초를 이때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십자군전쟁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하였던 유럽사회를 변화시킨 주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마라의 학살
1096년 제1회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십자군은 안티호크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눈앞에 두었다. 이 무렵〈마라의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 출신의 기사 보에몽이 이끄는 십자군 부대는 마라성에 도착하여 목숨이 아까운 자는 궁전 안으로 피난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그런 다음 성안으로 진격, 닥치는 대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사라센 인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였으므로 성안은 시체로 뒤덮여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게다가 궁전에 피난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공격해서 소유물을 빼앗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팔아버리고 말았다. 마라에 머문 지 1개월, 식량이 떨어지자 사라센 인을 죽여 톱으로 배를 갈라보기도 했다. 사라센 인들이 금은보화를 삼켜 뱃속에 간직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들은 또한 죽은 사라센 인의 고기를 요리해 먹기도 했다. 십자군의 약탈과 만행은 비단 마라에서 만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들은 남하를 계속, 1099년 6월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 전투는 6주일간 계속되었다. 여기서도 십자군은 적군은 물론 주민들까지 무차별로 죽이는 잔학성을 보였다. 십자군에 종군했던 남프랑스 출신 성직자의 기록을 보자.「거기엔 너무도 처참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큰 거리와 광장엔 사람의 머리며 팔다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십자군은 시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신전과 벽들은 물론 기사가 잡은 말고삐까지 피로 물들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성지 순례를 방해했던 자들로 더럽혀졌던 이곳이 그들의 피로 씻겨져야 한다는 신의 심판은 정당할 뿐 아니라 찬양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십자군의 대량학살은 신의 심판이요 영광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참고문헌
민석홍 『서양사 개론』 삼영사 1984
김태권 『십자군 이야기 1 , 2』 길찾기 2003
Bartlett, W. B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한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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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09
  • 저작시기2005.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8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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