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고려시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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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회화
(1)고려불화
(2)고분벽화
(3)일반화

2)도자공예

3)불상조각

본문내용

이와 같은 경향은 중기 이후, 특히 원나라 침입 이후 몽골의 취향도 곁들여진 말기 현상이었다고도 추정된다.
고분벽화에서는 그림의 성격 및 화지(畵地)의 조건 때문에 묵선(墨線) 위주의 평면적 약화(略畵)로 되어 있으며, 1971년에 발견된 거창군(居昌郡) 둔마리(屯馬里) 고분벽화가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벽화는 전실(前室)로 추측되는 동실(東室)의 동벽과 서벽의 북반부에 남아 있고, 목관이 들어 있던 서실(西室)의 서벽 남반부에도 남아 있다. 벽면에 흰 회칠을 하고 그 위에 묵으로 인물의 윤곽과 모발을 그린 다음 황갈색청록색으로 의복을 채색한 것이며, 사실성보다는 생동감에 치중하였다. 인물들은 대부분 연화문두광(蓮花文頭光)을 가진 불계천녀(佛界天女)들이나 바지를 입은 남자도 섞여 있다. 이 벽화는 강한 필선(筆線)이 인물의 동작을 강조하고 있으나,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같은 용모의 달걀형 얼굴이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회화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 고분에 십이지석(十二支石)을 돌리던 통일신라의 묘제(墓制)나 석관(石棺)에 사신(四神)을 선각(線刻)하던 고려의 풍습 등이 벽화로 전이된 것이라고 추측되나, 고려와 같은 시대인 요송의 대륙묘제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에 영향받은 것으로도 짐작된다.
7. 고려의 공예문화
통일신라의 범종(梵鍾)이 고려시대로 이어졌으나 형식이 차츰 변화하고 특히 12세기부터는 크기도 작아져 조각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라종의 전통은 점차 사라졌다. 신라종의 경우에는 입지름과 높이의 비율이 1:1.3 정도인데 비해 고려종은 처음에는 1:1.1~1.2이다가 후기에 1:1까지 되어 옆으로 벌어진 형태가 되었다. 또 종신상대(鐘身上帶) 위에서 연판(蓮瓣) 또는 화문대(花紋帶)가 밖으로 돌출하거나 옆에 있는 유통 상부에 구형(球形) 장식이 있는 것도 1112세기 이후의 고려종의 특색이다. 종신(鐘身)의 비천(飛天) 대신에 여래보살상 등이 나타나는 것도 고려종의 새로운 현상이다.
현존하는 고려종은 그 수가 적지 않은데 연대가 확실한 기년명종(紀年銘鐘)으로는 일본 히로시마[廣島(광도)] 쇼렌사[照連寺(조련사)] 종을 비롯하여 국내외에 15개가 알려져 있다. 이 중 천흥사종(天興寺鐘;국립중앙박물관)은 높이 1.7m의 대종(大鍾)으로 형태부터 세부묘사까지 신라종을 모방한 작품이며, 여주(驪州) 상품리(上品里)에서 출토된 청녕사년명종(淸寧四年銘鐘)은 높이 63.5㎝, 입지름 53.5㎝로 상대에서 돌출한 화문대, 유곽(乳廓) 밑에 매달린 듯한 조그만 좌불 등 고려종으로서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고려시대 불교공예품으로 종 다음으로 특색있는 것은 동제향로(銅製香爐)이다. 이것은 넓은 테를 돌린 주발과 같은 몸체 밑에 위가 좁고 밑이 퍼진 나팔 모양의 굽이 달린 것으로, 표면에는 연화(蓮花)보상화(寶相花)용(龍) 등의 문양과 불상을 상징하는 범자(梵字)가 은(銀)으로 상감(象嵌)되어 화려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고려의 동향로는 신라시대의 형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되나 아름다운 형태에 은상감장식을 한 것은 고려 고유의 특색이다. 현존하는 향로에는 밀양(密陽) 표충사(表忠寺)의 것을 비롯해서 국내외에 5개가 있다. 1214년(고종 1)의 건봉사(乾鳳寺) 향로만 해도 보상화문(寶相花紋)이 회화적인 구도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1344년(충혜왕 복위 5)의 봉은사(奉恩寺) 향로는 완전히 도안화(圖案化)하여 공간 충만의 역할만을 하고 있어 문양에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고려시대 도자기는 무유(無釉)와 시유(施釉)로 나뉘며, 이 중 시유도자기가 고려자기를 대표한다. 무유도자기는 색조나 태토질(胎土質)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신라토기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유도자기는 청자(靑磁)백자(白磁)천목(天目)녹유(綠釉) 등이 있다. 고려청자는 문종(文宗) 전후에 송나라의 화난[華南(화남)]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변천은 일반적으로 청자의 발생에서 쇠퇴까지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하였으나 점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비색청자(翡色靑磁)가 등장하고, 중기 이후에는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象嵌靑磁)가 출현하였는데, 상감청자는 순전히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감청자가 다시 동철기(銅鐵器)에 접목되어 은동상감기(銀銅象嵌器)를 낳았는데, 고려 말기에 이르러 청자는 실질적으로 쇠퇴하였으며 점차 속화(俗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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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10
  • 저작시기2005.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9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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