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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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릿말

Ⅱ. 전산업사회의 경제 및 정치적 변환.

Ⅲ. 산업혁명의 원인

Ⅳ. 산업혁명의 발전단계

Ⅴ. 산업혁명의 영향

Ⅵ. 맺음말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도시를 성장시킨 점이다. 또한 이에 수반해서 인구의 분포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즉 농촌인구와 도시인구의 관계에서 볼 때 1696년에 기록된 Gregory King 에 의하면 London 은 53만의 주민을 보유하고, 타도시 및 Markettown의 인구는 87만인데 대해서, 대소촌락의 인구는 실로 410만을 헤아렸다. 70년후 Arthur Young 은 London 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육분의 일을 포함한다고 계산하고, 영국과 같이 번영하는 나라에 있어서는 국민의 반수가 도시에서 생활한다고 기록했다. 이 두가지 추산은 신빙성이 매우 희박한 것이지만, 이 량자의 대조는 그 당시 농업지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의 경향을 정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Arthur Young 시대 이래 그 불균형은 더욱 현저해진 것이 사실이다. 1881년에 있어서 도시의 10만을 헤아렸다. 70년후 Arthur Young 은 London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1/6을 포함한다 총인구는 17,285,026명 즉 총인구의 약 66.6%인데 대해, 농촌의 인구는 8,683,026명 즉 33.3%에 불과했다. 직업에 대한 추세 중 Arnold Toynbee는 1696년이 G . king 의 것과 1796년의 A . Young을 대비하고 있다. 전자에 의하면 Freeholders ( 자유토지보유권자 ) 및 그 가족은 94만명, 농업자와 그 가족수는 75만명, 노동자 및 그 외 고용인은 127만 5천명, 소주택거주자 및 빈민은 130만명으로 전농촌인구는 426만 5천명인데, 이에 반해서 직공 및 수공업자는 24만명에 불과했다.
Arthur Young 은 각 계층의 인구수를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Farmers(whether freeholders or leaseholders),
their servants and labourers 2 , 800 , 000
Manufactures and labourers 3 , 000 , 000
Landlords and their dependents, 800 , 000
fishermen and miners
Persons engaged in commerce 700 , 000
Non-industrious poor 500 , 000
Clergy and lawyers 200 , 000
Civil servants, army and navy 500 , 000
Total 8 , 500 , 000
이러한 증가는 초기에 있어서 아무도 그 문제를 경험하기 못한 특별한 어려움을 일으켰다.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다소 쓸만한 집으로 집중되었으며 많은 가족이 한 방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거대한 빈민지역이 생기고, 그곳은 너무나 빈곤했고 또한 이 새로운 우울한 도시에는 빈곤과 불행이 대규모로 확산되어 갔다. 실질적으로 도시생활을 위한 조직 즉 위생화재경찰 같은 것은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공업주의는 물질적인 진전을 의미하지만 인간의 혁명에 대한 대가는 대단한 것이었다. 공업주의의 첫 결과의 하나는 과거 수공업에서 하던 것 보다 훨씬 더 단조로운 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을 숙련된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기계를 조정하는 직공으로서 고용되었다. 언제가는 가정에서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던 것이, 지금은 공장안으로 이동했다. 56세된 어린이까지도 최대의 임금으로서 일을 하였다.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처자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만 했다. 1834년의 빈민법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을 경과한 영국의 경제 사회상을 구명해 보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Ⅵ. 맺음말
인류사회는 그 발생 이래 생산기술면에 있어서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18세기 후반 이후의 기술의 발명사용은 그 장기간 계속되어온 생산방법의 근본적 변혁이고 그것은 동시에 사회구조의 근저에 영향을 미친 혁명이며, 이 혁명을 시발점으로 현대 우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혁명은 비단 18세기부터 19세기초에 걸친 문제만이 아니고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특히 18세기말부터는 중공업생산재부문 그리고 그 동력으로서의 전기석유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으로 이행한 점에 관하여는 진술한 바이다. 이것은 제 2차 산업혁명이라고도 지칭되나, 현재 다시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과 Automation에 의한 기술혁신은 제 3차 산업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이 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정은 충분히 고찰되어야겠으나, 동시에 이 혁명이 그 기술적 성격에서 특정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서구와 북미에 보급되고 뒤이어 로동구일가호등에 파급되었던 것에서 금일 아직도 아시아아프리카의 제국에 확대되 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이 갖는 세계사적인 의의와 또한 그것을 받아드린 제국이, 각기의 역사적 사정에 응해서 어떠한 반응을 낳았으며 또 어떠한 형의 사회를 형성해 갔느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혁명의 계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 신석기혁명 ' 이래 계속적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왔고 이에 수반하여 인간의 정신문화에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여 왔던 것이다.
19세기 이후의 대중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18세기 이래의 집중적인 산업화의 진전은 그 질과 양에 있어서 수다한 변화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도산업화의 발전은 과잉생산과 독점자본주의를 이룩하였으며 국제사회의 약육강식인 제국주의적 형태로서 나타났던 것이다. 즉 적자생존의 Darwinism을 배경으로 하는 제국주의는 양차대전의 인류의 비극을 재래하였던 것이다.
참 고 문 헌
김순곤, 『영국산업혁명의 원인분석』, 건대사회과학, 1978
딘필리스, 『영국의 산업혁명』, 믿음사, 1984
선군성, 『영국산업혁명의 역사적 진전과정』, 영남대학교, 1978
지석효, 『영국산업혁명 초기의 자본형성에 관한 연구』, 충북대학교, 1985
정윤형, 김종철 공역, 『산업혁명사』, 성균관대, 1988
이영석, 『공장에 관한 담론』, 전영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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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19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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