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다.
4. 귀족사회 건축의 세련미
고려 예술의 귀족 취미가 건축에 반영된 가장 뚜렷한 대상으로는 법천사에 세워졌던 지광국사현묘탑을 들 수 있다. 비록 내부 공간을 갖춘 본격적인 건축물은 아니지만 이 탑에 표현된 섬세한 장식과 전체 형태가 갖는 세련되 조형미는 고려 귀족 건축의 일면을 잘 드러내 준다.
지광국사는 덕종, 정종, 문종 세 왕의 각별한 총애와 우대를 받은 당대 최고 명성을 누린 승려이다. 입적 후 그가 말년에 거처하던 법천사에 1085년 그의 묘탑이 건립되었다. 평면은 방형이고, 이중 기단위에 네모난 탑신과 옥개석을 꾸미고 상륜부를 올려놓은 것으로 평면 형태에서 종래의 팔각원당형을 벗어나 일반 탑파와 같은 사각형 평면을 채택한 점이 주목된다. 지대석을 넓게 잡고 네 모퉁이에는 마치 용의 발톱이 지면을 움켜 쥔 듯한 모습이 길게 뻗쳐 있다. 지대석 위의 기단은 여러 단으로 구성되고 각 단에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탑신에는 앞,뒤면에 문이 새겨지고 좌우에는 페르시아풍의 창을 조각하고 다시 작은 구슬이 이어진 문양으로 장식했다. 지붕에도 장막이 늘어지고 불, 보살, 봉황 등의 장식이 가득하다. 현묘탑의 탑신 네 모서리에는 대나무로 기둥을 세운 흔적이 새겨져 있다. 또 옥개석 처마 끝에는 마치 창문을 가리기 위해 천을 늘어뜨린 것과 같은 모습을 돌로 새겨 놓았다. 현묘탑 외에 법천사터에는 뛰어난 조각 장식이 남아있는 탑비가 있다. 비석 측면에 새겨진 용 문양은 그 섬세하고 정교한 기법이 단연 돋보인다. 또 주변 다른 건물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 초석이나 석재 장식물을 찾아 볼 수 있다.
11,12세기경 부도들은 9,10세기 부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형태가 단순해지는 경향을 띄고 팔각 원당형 외에 종 모양의 석종형 부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석탑은 통일신라에 비하여 수도 많고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또 3층 외에 5층, 7층, 9층 등 다양한 층수를 가진 탑들이 나타난다. 지방적 특색이 나타나는 것도 이 시기 석탑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는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추녀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하며, 기단이 단층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건축공사는 공부가 이를 관장하고 공부 산하의 장작감이 전담했으며 장인들은 공부가 전국에서 우수한 인력을 동원해 관장했다. 이것은 통일신라 때 연선 업무를 맡는 관청이 여러 곳으로 세분되고 장인들도 각기 분야에 따라 독립적으로 조직되었던 것과 비교할 때 건축 생산조직이 전체 행정 체제 안에 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기술 인력을 중앙에 집중시킴에 따라 이 시기에 지방에는 기술 인력의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의 큰 사찰에서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찰 자체에서 기술자를 배출하여 승려들이 스스로 건축공사에 기술자로 종사하는 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불교에서 승려들이 직접 노역을 담당하는 것은 하나의 수행광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것은 특히 선종 사원의 하나의 전통이었다. 고승의 묘실을 세우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승려들에게는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이 계속되면서 승려들의 작업은 고승의 묘실만이 아니고 일반 불전의 건립에까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고 짐작된다. 이런 과정에서 뛰어난 건축기술을 익힌 승장들의 출현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11,12세기의 고려 귀족사회의 건축은 안정된 작업여건 속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축적한 관료 기술자들과 신앙심을 바탕으로 자체 불교사원의 건축공사에 종사한 승장들의 뛰어난 기량을 뒷받침해서 섬세하고 화려한 귀족 취미의 세련미를 획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