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최치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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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최치원(崔致遠)의 시와 소외의식(疏外意識)

1)삶의 의식

2) 신분적 처지와 소외의식

3) 현실 상황에 대한 소외의식

본문내용

.
葛上雲峰 平觀世界空 千山分掌上 萬事豁胸中
塔影日邊雪 松聲天半風 烟霞應笑我 回步入塵籠
(崔文昌侯全集, 28쪽)
위의 두 시는 의취(意趣)가 비슷하다. 진세를 떠나 선계나 불계의 한가한 곳에 머물고 싶지만 세속에 발이 묶여서 다시 돌아감이 아쉽다는 뜻이다. 앞의 시에서 현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마고(麻姑 ) 선녀와 같은 여도사를 만나는 일이었는데, 바닷물같이 많은 속세의 번뇌가 언제 마르겠느냐고 하소연함으로써 진세를 떠나 선계에 노닐고 싶은 심정을 드러내었다. 뒤의 시에서 현실을 벗어난 활연한 기쁨을 노래한 다음에,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봄으로써 은일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이런 시들이 최치원의 지향하는 바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갈매기(海鷗)
이리저리 물결따라 훨훨 날며 가볍게 깃을 펄럭이니 정녕 신성이네.
자유롭게 세상 밖을 드나들고 거침없이 선경에 왕래하는 구나.
고량진미 좋은 맛도 알은 체 아니하고 풍월의 참 맛을 지극히 사랑하네.
아마 莊子의 나비 꿈을 생각하고 나도 그대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리라.
慢隨花浪飄飄然 輕擺毛衣眞水仙 出沒自由塵外境 往來何妨洞中天
稻粱滋味好不識 風月性靈深可憐 想得漆園蝴蝶夢 只應知我對君眠
(國譯 孤雲先生文集 下,630쪽)
이 시에서 갈매기로 투영된 시인의 소망이 잘 드러난다. 첫째 연에서 무뤼을 날고 있는 갈매기를 신선이라고 하고, 둘째 연에서 그 자유로움을 부러워하였다. 셋째 연에서 세속적 욕망을 버린 자연 속의 삶을 ‘풍월의 참 맛’으로 동경하고, 끝 연에서 이러한 경지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마치 나비 꿈을 꾸고 있는 장자(莊子)와 같다고 비유하였다.
이로 보아 그는 소외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모순된 처지로부터 떠나서 갈매기 같은 자유로움 신선 같은 탈속의 경지를 갈망하였다고 하겠다. 그가 현실에서 느낀 소외의식은 현실에서의 무력감이나 고립감 혹은 무의미성 등으로 함몰되지는 않고, 그러한 소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로의 지향, 곧 자연 몰입 내지 자연에의 동화로 나아갔다고 할 것이다.
가야산 독서당에 題함 (題伽倻山讀書堂)
미친 듯 쏟아지는 물은 바위를 치며 깊은 산을 울려
지척에서 하는 말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항상 세상의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게 했네.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崔文昌侯全集, 27쪽)
결국 최치원은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없는 현실을 떠나 가야산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그가 바라던 은일의 세계에 침잠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잇었다. 이 시에서 굳이 ‘세상의 시비소리’가 듣기 싫어서 폭포소리로 산을 에워싸게 했다라는 것은 그의 의식 속에서 세상일을 깨끗이 잊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시비소리야말로 그의 의식의 저변에 남아있는 현실에 대한 미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세상시비로부터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므로, 그의 내면에는 아직도 현실에서의 소외의식과 그에 대한 미련, 그리고 모든 세속사를 잊고 새로운 세계 곧 자연 속에 은둔하고자 하는 지향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은두에의 지향은 드러나지만 아직 자연에 완전히 동화하지는 못했다고 할 것이다.
벽송정(碧松亭)
늙은 몸 돌아와 松亭 아래 누워
한 줄기 가야산의 푸른빛을 바라보노라.
暮年歸臥松亭下 一抹伽倻望裏靑
(崔文昌侯全集, 32쪽)
이 시는 비록 낙구(落句)이긴 하지만 그가 바라던 자연에의 귀의가 아무런 갈등 없이 드러나 있다. 이 경지가 바로 그가 현실적 소외의식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지향했던 세계 즉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경지는 후대에 이수광이<지봉유설(芝峯類設)>에서 최치원의 작품이라고 한 ‘화개동시(花開洞詩)’8수에서 자연에 동화되어 달관과 관조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들은 후대인의 모작이 아닌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하겠다.
◇◆
최치원은 한국 한문학의 개조(開祖)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난이 엇갈린다. 그 이유는 그의 입지에서 기인한다. 외래적 중국문화와 불교문화, 그리고 전통문화가 병존하고, 신라 고유의 사회 계급구조가 견고하던 시절에 그는 진출에 한계를 지닌 육두품 신분으로 태어났고, 이를 타개하고자 중국에 갔지만 중국에서도 고난과 성취가 교차되었으며, 해외인이라는 장벽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의 소외감만 심화되었다. 중국고관들에 대한 깍듯한 예의는 겉치레일 뿐이고 그의 내면은 현실에서 느끼는 한량없는 소외의식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현실로부터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은둔의 세계로 지향하고자 했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그의 소외의식을 씻어줄 현실적 여건은 마련되지 않아서 육두품은 여전히 소외되었고, 그는 지방관직으로 전전하다가 결국 가야산에서 은둔하고 만 것이다.
그의 시 속에 이러한 내면적 소외의식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작품을 분석해 본 결과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그의 시에서 확인되는 소외의식의 바탕은 중국에서는 해외인이고 신라에선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성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래서 그는 작품 속에서 소외의식과 더불어 보상적 심리에서 오는 강한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다.
둘째, 이러한 소외의식으로 말미암아 그는 기득권자에 대하여 연관을 맺고자하는 욕구를 나타내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감을 수립하지 못한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하며, 현실에 대한 비판과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을 분출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이러한 것들을 거두고 귀향하고자 했다.
셋째, 소외의식으로 인한 그의 내면적 방황은 결국 현실로부터 초탈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현실의 한계를 절감하고 타고나 s본성을 지켜 영원한 고향인 자연에 돌아가 거기에 동화된 삶을 살고자 했다.
이와 같이 최치원의 시에는 신분적 한계에서 비롯된 깊은 소외의식과 현실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동화하고자 하는 지향성이 나타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소외의식을 드러낸 시들로 그는 한국 한시사의 첫 장을 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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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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