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의 3대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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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랑스 자동차의 3대주역

크게본 프랑스 자동차의 역사

프랑스자동차 메이커

푸조

시트로엥

르 노

본문내용

가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미친 사람들의 경주"라 불릴 만큼 험악한 경주였던 1901년 파리-베를린 경주와 험준하기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했던 1902년의 파리-비엔나 경주에서 모두 우승하여 르노 차의 우수성을 알렸다. 다음해에도 역시 르노 형제는 파리-마드리드 경주에 참가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경주에서 마르셀이 사고로 죽게 되었다. 같이 참가했던 루이는 마르셀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경기 도중 르노팀을 모두 철수시키고 파리로 돌아왔다.
형의 죽음을 경험한 르노 형제는 이후 자동차 경주를 포기하고 승용차 개발에 전력을 모았다. 1905년 1060cc 2기통 엔진을 장착하여 60kmh의 최고속도를 내는 새로운 모델인 AG가 선보였고, 특히 4인승 쿠페형은 파리와 영국 등 유럽의 거리를 누비는 택시로 유명해졌다.
이후 페르낭도 1909년 자동차 경주에서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루이 혼자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초로 지붕있는 자동차를 생산하여 파리의 여인들로 부터 대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한편 1920년대 프랑스에서는 세계적인 경제 공황으로 인한 경기 위축으로 소형차 수요가 많아졌고, 르노는 시트로엥(Citroen)과 함께 소형차 제작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르노에서 개발한 950cc 소형 르노 6CV가 1927년 사하라 사막 횡단에 성공한 것에 힘입어 르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1930년대 초에는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여 현대화의 기반을 갖추었다.
1차대전은 르노에게 커다란 기회가 되었다. 항공기 엔진과 탱크 등 군수용품을 생산함녀서 사세를 확장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전쟁후 르노는 소형차에서 고급 대형차까지 생산하는 프랑스 최대의 메이커로 올라섰다. 1920년대 전반까지 르노가 선두를 달렸지만 1919년 시트로엥이 일으킨 회오리에 휩쓸린다. 르노와 푸조의 소형차 경쟁에 시트로엥이 끼어든 것이다. 무리한 프로젝트를 추진시키던 앙드레 시토로엥이 사망했지만 르노는 졸속경영 탓에 왕좌탈환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 루이는 파리가 독일군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공장의 유지를 위해 독일군에 공급할 트럭을 생산하는 등 독일군에 협조하였다. 그러나 1944년에 파리가 독일점령에서 해방되자 루이는 전범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그 해 10월에 풀려났으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하였다.
루이의 사망 이후 1945년에, 프랑스 정부는 그가 적국에 협력한 것에 대한 일종의 '벌'로서 르노를 국유화시켰다. 르노가 국유화되긴 했지만, 1946년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투옥되어 있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가 디자인한 소형차 르노 4CV가 파리 자동차 박람회에서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50년대 이후 프랑스의 국민차로 자리잡는 등 르노의 명성은 유지되었다. 특히 포르쉐가 디자인한 독일의 국민차 비틀(Beetle)을 닮은 르노 4CV는 1964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무려 111만대가 팔릴 정도로 르노의 인기 모델이었다. 르노 4CV의 후속모델로 선보인 도핀느(Dauphine) 역시 비틀처럼 엔진이 뒤에 있는 소형차로 1968년까지 거의 200만대를 생산해 르노를 프랑스 제일의 자동차회사로 발돋움시켰다.
이어 르노의 입지를 다져준 모델은 르노4였다. 르노 최초의 앞바퀴굴림 차인 르노4는 700만대를 생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르노차들은 앞바퀴굴림으로 바뀌게 된다. 르노4,5 이외에 르노 9,11, 18 그리고 고급차인 르노25로 짜여졌다. 하지만80년대 들어 르노는 전반적인 침체에 빠지게 된다. 설비과잉과 생산성 저하로 판매가 뚝 떨어졌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시장인 미국에서도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84년 데뷔한 미니밴 에스파스가 각광을 받으면서 재기를 노리게 된다. 에스파스는 유럽에서 미니밴 시장을 연 주인공으로 현재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90년대 들어 르노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90년 소형 해치백 클리오의 돌풍과 함께 92년 트윙고, 95년 메가느의 인기가 계속되었다.
93년 르노는 스웨덴의 볼보와 합병을 추진했다가 무산된적이 있다. 이후 계속되는 거대 메이커간 짝짓기에서 소외되어 오다가 99년 닛산을 인수하면서 GM,포드,도요다,다임러 크라이슬러,폴크스바겐에 이은 빅6로 떠올랐다. 그리고 올해 한국의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빅5 진입을 노리고 있다
(http://dwcij.com.ne.kr/bio/bio_renault.htm)
(http://my.dreamwiz.com/rnsamsung/renaultstory.htm)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항상 많은 자동차 사진들을 보아왔고 차들의 이야기를 이 레포트를 쓰면서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계기로 프랑스 자동차 회사에 대해서나마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자료를 여러 가지 찾다보니 짧으나마 더 많은 메이커와 더 많은 차종에 대한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외제자동차에 대한 관세 정책으로 외국 메이커의 국내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만약 외제차 수입관세를 없앤다면 진정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힐 것임을 확인했다.
프랑스 차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사의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형차를 생산하는 메이커가 있는가하면 대형차만을 주로 생산하는 메이커가 있고, VAN이나 웨건을 따로 생산하는 메이커도 있었다. 그리고 한 모델이 나오면 그 모델에 대해서 오랬동안 지속시켜야하는데 우리나라는 1년이 멀다하고 신재품이 나와서 금방 옛날차가 돼고 만다 삼성이나 쌍용자동차는 그런데로 오래 그모델을 쓰고 있지만 현대나 기아는 1년이 멀다하고 1,2,3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내구성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메이커의 개성이 없어 세계시장에 내새우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우리 나라도 회사의 몸체를 키워가기 보다는 내실을 단단히 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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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1.05.12
  • 저작시기2011.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76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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