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사 과제_식민지 근대화론과 그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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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며

Ⅱ. 식민지 근대화론

1. 내용
2. 성장을 위한 ‘기반’의 존재
3.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오해와 본질

Ⅲ.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1. 내재적 발전론
2. 민족 사학계 위주의 비판
3. 허수열의 논리
4. 통계 비판
5. ‘가치론’에 따른 비판

Ⅳ. 다른 관점의 비판

Ⅴ. 새로운 관점에서의 대응 모색

Ⅵ. 마치며

본문내용

계를 넘어 한국 경제의 풍부한 동학을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이 ‘21세기적 사회구성체 논쟁’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결국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이들이 제기하는 선진자본주의로의 도약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근대’를 비판하며 내재적 발전에 의한 독자적 사회전망이라는 ‘(민족주의적) 근대’를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양상의 근대를 동시에 넘어서는 ‘근대의 이중적 극복’과 관련 있다. 』
앞장들에서 계속 지적했던 ‘가치’ 차원에서의 검토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안수찬기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본질을 그대로 보고 논리 자체의 합리성을 받아 들이면서, 더 생산적인 발전을 위한 협력(?) 차원에서 비판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기의 의미를 밝히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본다. 그러니, 식민지 근대화론이 제시하는 경제사에 대한 설명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되,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적절히 견제도 하는 등 사회 전체에 좋게 되기 위한 노력을 같이 하자는 뜻으로 생각된다.
다른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들에 비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가치’를 논하는 것이, 식민지기에 이식된 원형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방향에서 논의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생산적인 발전을 위한 협력, 경쟁의 차원에서라면 얼마든지 좋을테니 말이다.
Ⅵ. 마치며
부끄럽게도 ‘생전 처음’ 겪어 보느라 막막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신선함과 지식을 알아 가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져 보기도 하는 시간을 거쳐 과제를 마무리 하는 단계까지 와서 다시금 ‘식민지 근대화론’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이런 상식적인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게 되고,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관련 학자들을 나쁘게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 지기까지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지배하에서 조선에 주어 졌던 조건들이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 지는것처럼, 해방 이후의 경제성장이 전적으로 식민지의 유산에 의한 것이라 연결 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식민지배 자체의 긍정성(?)을 주장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려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조선후기의 민중사회 속에, 서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로 나아갈만한 요소들이 나타났을 수도 있고, 그것이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일제의 침략 직전인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서구는 물론이고 이웃의 일본에 비해서도 ‘경제 발전의 단계’라는 측면에선 아주 쳐져 있는 상태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시초인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은 2차, 3차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구조의 ‘이식’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그때까지 쳐져 있었던 건 물론이고, 폐쇄적인 국가였던 이유로 자연스런 자본주의의 도입이 언제 이뤄질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발전의 속도가 얼마나 지금 수준으로 따라와 줬을지 낙관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내재적 발전론적인 논리에 따라, 조선 내에서 자체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다 가정 하고, 외부 충격 없는 진행상황을 상상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순수한 자생적 자본주의를 이룩한 영국조차도,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200여년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다소 억지스럽게, 19세기 조선에서 영국에서 그랬던 것 같은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랬다면 과연 똑같은 시간이 지난 후 조선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 있었겠는가. 늦게나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교류는 시작되었을 것이고, ‘바람’이 어느 정도 불어 오긴 했겠지만, 근본적으로 1900년이 다 된 시점부터 자생적 발전을 시작해서, 지금 수준의 자본주의 국가를 이루는데는 얼마의 시간을 필요로 할까. 조선의 저력만 두고, 외부의 이식 따윈 필요 없이 현대 수준의 자본주의 경제를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은 허무하게 들릴 뿐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은, 기본적인 토양, 즉 구시대적 생산관계에 갖혀 있던 조선에, 자본주의화 과정으로 급선회 할 수 있는 계기가 식민지시기에 마련 되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식민지시기를 훗날 경제 발전의 ‘원인’이라기 보단 ‘원형’으로서 여긴다는 것이다. 시기 사이의 ‘연속성 검증’에 집중해서 공격하려 할 필요가 없고, 식민지배를 긍정한다거나 나아가 정당화 한다는 식의 주장은 엉뚱한 매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역사를 대하고자 하려면, 역사를 역사 그대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자기가 믿어 왔던 사실이(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라면 더더욱) 뒤집히는 걸 겸허하게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수준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면, 역사를 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독자가 쾌감을 느낄만한 방향으로 만든 소설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배우는 입장에서도 그런 소설을 읽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그래봤자, 자기 머리 속에 남은 건, 자기가 알고자 했던‘역사’가 아니라 공상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인정할 건 겸허하게 인정하고, 생산적인 방향의 발전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태도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받아 들여야 할 것 같다.
참고
조석곤,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재검토”
허수열, “개발 없는 개발”
허수열, “개발과 수탈론 비판”
안병직, “역사비평(2002, 59호)”에 실린 대담
전상인,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이해와 오해”
이영훈,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과 특질”
주종환,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
안수찬,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과거와 미래, 식민지근대화론”
김종성, “식민지 근대화론의 3대 오류” (오마이 뉴스 기사)
동북아 역사재단,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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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6페이지
  • 등록일2011.08.01
  • 저작시기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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