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5, 16세기에 이르면 이 도시엘리트들의 구성과 외형이 변해서 복잡해지는데 제3계급인 부르주아의 출현 때문이다. 이 제3계급은 그 사회경제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배경 때문에 문화적 상류계층이 되어 유럽의 발전에 새로운 추진력으로 기능하게 된다.
---생각해 볼 문제---
1. 저자는 유럽을 서유럽으로 한정시켜 사고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유럽문화사에서 유럽문화란 로마 교회가 그 보편성의 기초를 닦은 서부유럽의 문화를 지칭하고 있다. 서부 유럽이 로마 교회로 보편성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면 동부유럽은 슬라브적이라는 종족적 동질성과 그리스 정교회라는 종교 문화적 보편성을 토대로 나름의 통일성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유럽이란 서유럽과 동유럽을 아우르는 것인데 저자는 서부유럽이 곧 유럽이라는 도식에 충실하다. 이것은 저자가 서유럽중심주의의 시각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유럽을 서부유럽으로 한정시켰을 때 동부 유럽은 서부유럽에 통일성을 제공하는 주요한 타자가 되었을 텐데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2. 이슬람을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보는 저자의 시각은 과연 타당한가? 이슬람이 단지 로마 제국의 옛 영토를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슬람을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간주할 수 있는가? 이외에도 저자의 이슬람관은 다소 편협한 면이 있다. 저자에게 이슬람이란 유럽을 타자화하는 존재로서 부각될 뿐이다. 따라서 사라센 제국의 양대 칼리프 중 서칼리프의 제국에 대한 논의가 이슬람 논의의 주를 이룬다. 서칼리프 제국이란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한 베르베르족이 건설한 그라나다 왕국이다. 이슬람자체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이슬람을 유럽을 위한 장식품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3. 또한 이슬람은 수시로 그 정체성이 아시아와 유럽을 오락가락한다. 유럽의 고의적 타자화의 대상이 될 때는 유럽적인 존재로 지칭되다가 외부적인 요소를 전달해 줄 때는 아시아로 인식되곤 한다. 이는 역시 저자가 이슬람을 유럽 형성하는 도구로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동’은 유럽이기도 했다 아시아기도 하는 모호한 존재로 처리되고 있다.
3. 봉건제를 제도라고 볼 수 없음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저자의 견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봉건제를 하나의 생산양식으로까지 보는 마르크스의 견해와 봉건제를 충성의 위계질서이지 제도로 불릴만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대비시켜 보면 어떨까?
4.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의 도시와 농촌 간에는 문화적 단절성이 강력했는가? 그리고 농촌 공동체가 유럽적인 것의 형성에 기여한 바는 전무한가? 계급 문화적 관점에서는 분명 단절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이 유럽적이란 단일한 공동체의 상상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다는 말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유럽이라는 단일한 맥락의 형성에 있어서 지나치게 엘리트의 역학과 그 문화에 방점을 찍고 온전히 도시에 비중을 두고 있다. 농촌공동체나 농민적 전통에 주목하다 보면 통일성 대신 민속의 외피로서 다양성이 드러나서 의도적으로 농촌공동체가 유럽이란 관념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들을 회피한다는 인상이 든다.
5. 저자는 유럽이란 단일한 이미지 내지는 상상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규명함으로써 그것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모순에 빠진다. 또한 19세기말까지도 유럽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 거주자들의 상당수가 여전히 유럽적인 것에 대한 상상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임을 생각해 보면 유럽은 문화적 상상체가 아닌 정치경제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