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낙 했다는 애인의 편지였다. 그러나 시계는 멈추지 않고 3분, 2분, 1분이 지나면서 마침내 청년은 숨을 거두게 된다는 내용이다. 억만장자의 유산 상속도, 박사학위도, 결혼 승낙도 죽음 앞에서는 별 의미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죽음의 고통과, 절대로 명확히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가지 느낌이 있었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죽은 뒤에 나의 생각이 정지된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며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정말 부질없는 짓이라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이 더 심해진 것은 이종사촌 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이다. 장난을 심하게 치고 늘 짓궂었던 사촌동생을 별나다고 생각했고 나를 좋다며 따라다니는 것도 귀찮아했었다.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그 당시에만 놀랐을 뿐 요즘 의학기술이 좋아져 꼭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일단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나보다 훨씬 어렸던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귀찮아 하긴 했지만 항상 가깝게 느껴졌던 나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떠났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영정 앞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그 후로 한동안은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내 생활까지 무기력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종교를 가지면서부터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그 세계로 가는 길을 선택하려면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점점 죽어가지만 삶과 죽음은 돌고 도는 것이고 이어져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15분’이라는 연극을 통해서 죽음의 두려움을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종교를 접하면서부터는 내 삶이 앞으로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15분 안에 내가 바라던 온갖 행복한 일이 차례로 일어날지라도, 죽음의 공포에 떨기보다는 현생에 많은 것을 이룬 것을 뿌듯해할 것이며 다음 생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다른 방법들은 일관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지만 종교는 그 안에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삶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