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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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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문명충돌의 개념

Ⅲ. 문명충돌과 종교갈등

Ⅳ. 문명충돌과 9.11테러

Ⅴ. 문명충돌과 테러원인
1. 서구문명 대 비(非)서구문명의 대결
2. 부시행정부의 고립주의적인 보수강경 정책
3.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위치와 냉전의 후유증
4. 미국과 기독교도가 인류에 저지른 원죄

Ⅵ. 문명충돌과 새뮤얼 헌팅턴

Ⅶ. 문명충돌과 세계정세

참고문헌

본문내용

명의 관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들의 종속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문명의 확산은 사상, 가치관, 종교의 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대조직과 군사 훈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얻은 무기, 수송 수단 등 조직화된 폭력의 우위 때문임을 비서구인들은 잊지 않는다.
1910년의 세계는 인류 역사의 어떤 시기와 비교해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더욱 통합되어 있었다. 문명은 바로 서구문명을 뜻했으며, 서구는 세계의 대부분을 통제하거나 지배하였다. 이 때의 국제 체제라는 것은 주권을 가진 ‘문명’국가들과(유럽의 지배국가) 이들이 지배하는 식민지들로 이루어졌을 뿐 이였다. 이렇듯 서구에 의해 정의되는 이 국제 체제의 출현 속에서 자기네들끼리 문화적 동질성을 토대로 교섭을 해나갔고 또한 자기네끼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이 때의 갈등은 주로 자신의 관료 체제를 팽창하려고 기도하는 황제와 절대 군주와 입헌 군주사이에서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서구인들은 더 이상 군주가 아닌 국민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국민 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처음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대결로, 그 뒤에는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이념 대결로 바뀌었으며 냉전 시대에 이 이념들은 두 초강대국, 즉 미국과 소련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유럽적 의미의 전통적 민족 국가는 아니었다.
이리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문명간의 관계는 한 문명이 나머지 모든 문명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단계에서 벗어나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서구의 팽창’은 끝나고 ‘서구에 대한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균일하고 지속적인 양상은 아니지만 서구의 힘은 다른 문명들의 힘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고, 서구가 다른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꾸준히 미쳐 왔던 것에 비해 서구와 다른 문명들 사이의 관계는 이들 문명에서 나타나는 발전에 서구가 대응을 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러한 양상을 살펴보자.
먼저 영토와 인구면 에서 살펴보면 1490년 서구 사회는 발칸 지역을 제외한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는데,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 육지 면적 5250만 평방 마일 중에서 서구가 지배한 면적은 150만 평방 마일이었고, 1920년 영토 확장이 극에 이르렀을 때 서구는 전 세계 육지의 절반에 가까운 2550만 평방 마일을 직접 다스렸다. 그러나 1993년 서구가 지배하는 영토는 그 절반 수준인 1270만 평방 마일로 줄어들었다. 서구의 영역은 원래의 유럽으로 되돌아갔고, 반면에 독립된 국가들의 영토가 1920년에는 180만 평방 마일이었던 것이 1993년에는 1100만 평방 마일 이상으로 늘어났다. 비슷한 변화가 인구 규모에서도 나타났는데 1900년 세계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세계인구의 45퍼센트를 통치한 서구인은 수적으로 보아 세계 인구에서 갈수록 소수 집단으로 떨어지고 있고, 그와 반대로 비서구인들은 점점 건강해지고 문맹률도 떨어지며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생산력 면에서도 서구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절정일 때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84.2%를 차지하였던 서구 문명이었지만, 1991년 세계 7대 경제 강국의 조사결과 4개국, 곧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비서구 국가가 서구 국가를 제치고 차지하게 되었다. 총생산은 서구의 질적 우위를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 둘 가능성이 있지만, 이러한 기술은 이전되고 있으며, 만일 서구가 우위를 지켜 나가려 한다면 기술 이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사력은 규모, 기술, 조직력, 사회적 지원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1920년대의 서구는 이 모든 차원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이후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 서구는 근대화와 경제 발전과 맞물려 세계 평화 유지라는 명목 하에 대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의 군사력이 와해되고,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군사력 약화는 서방의 군사비 지출과 군사력 규모의 점진적이지만 뚜렷한 축소를 가져왔다. 더 이상 명목상의 유지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제 유일하게 공산국가를 유지하며 핵으로 위협했던 북한마저 사실상 평화유지에 동조하고 나선 이상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군사력에 대한 투자가 더욱더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력, 군사력 등 서구의 힘이 줄어드는 반면 동아시아나 이슬람 등 비서구 국가들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여기저기에서 독립하여 조금씩 경제적 자립을 하고 꾸준하면서도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비서구 국가들의 힘이 조금씩 커지면서 비서구 국가들의 문화가 점점 부각되어지고 있다. 힘은 거의 예외 없이 문화를 동반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한 문명의 힘이 팽창하면 동시에 문화가 융성하였고, 그 문명은 막강한 힘으로 자신의 가치관, 관습, 제도를 다른 사회에 확산시켰다. 서구의 힘은 10세기에는 유럽의 식민주의로, 20세기에는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으로 표출되었고 이 힘은 서구 문화를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막을 내렸고 미국의 헤게모니 또한 퇴조하고 있다. 고유 역사에 뿌리를 둔 습속, 언어, 믿음, 제도가 도처에서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서구문화는 움츠러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서구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진보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으며 복수의 다양한 문명들이 교류하고 경쟁하고 공존하고 화해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새뮤얼 헌팅턴 저, 이희재 역, 문명의 충돌, 김영사, 1997
서유석, 문명의 충돌과 인정투쟁, 대동철학회, 2003
이선엽, 문명의 충돌과 테러리즘의 기원, 한국테러학회, 2010
자크 G 외 2 명, 성전, 문명충돌의 역사 : 종교갈등의 오랜 기원을 찾아서, 한길사, 2003
최종호, 문명 충돌과 기독교 : 평화와 새 문명 창조를 위해, 경성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2003
Francis Fukuyama, 9.11테러사태 이후의 세계질서 : 문명의 충돌인가, 세계경제연구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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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5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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