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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 일본 군사정책, 일본 경제정책,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 일본 분권화 개혁,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 일본과 중국(중일), 일본과 북한,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 일본과 대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 군사정책
1. 방위정책
2. 군사동향

Ⅲ.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 경제정책

Ⅳ.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 안전보장이사회진출(안보리진출)

Ⅴ.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 분권화 개혁

Ⅵ.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과 중국(중일)

Ⅶ.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과 북한(북일)

Ⅷ. 동북아시대(동북아시아시대)의 일본과 대만(타이완)

참고문헌

본문내용

해양기지였으며, 이곳을 통해 기독교가 일본에 전파되기도 하였다. 그러니 대만은 흡사 오늘날의 남극대륙 같은 지위였다고나 할까? 그 후 청나라가 통치하기도 하다가 1895년의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할양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만이 할양되는 것은, 주인 없는 땅 같은 상태였던 대만의 소유권을 확정짓는 것과 같은 국제법 행위에 흡사했다는 생각도 든다.
셋째로 대만의 할양은, 침략을 직접 받으며 대만섬이 아픔 속에 몸부림치며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공격과 침략은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처참하고 집요하게 이뤄졌던 것이고, 청일전쟁도 사실상 우리나라 땅에서 승부가 났다. 전쟁터는 우리나라였으니, 중국인들에게 전쟁터의 뼈아픈 아픔은 없었다. 대만은 큰 상처를 받거나 전쟁터가 된 적도 없다가, 어느날 느닷없이 일본땅이 된 것이다.(중국인들은 남경학살이나 중일전쟁 등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일제침략의 피해를 극심히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침입은 한국이 처절히 방패막이 노릇을 하다가 당하는 것이니까, 인명(人命) 또는 모든 귀중문화재나 문화유산은 물론이고 중국의 국부(國富)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는 경미하게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대만은 그 어떤 전쟁피해나 침략피해가 없이 할양된 땅이라고 하겠다. 대만인은 그러므로 일본인에 대해 근본적 원한이나 아픔도 사실상 없다. 그러나 최초에는 일본군의 지배에 항거한 대만 원주민들의 항거로 7년간에 걸친 나름대로의 항전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일본군에 분노했던 것이나, 한국의 의병, 독립군 수준은 못되고 그것도 7년만에 끝났다. 그후 일본의 황민화정책 강행으로부터 우리 민족이 당했던 바와 같은 징용, 징병, 정신대에다 경제수탈 등을 당하다가 일본패전을 맞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만에 가서, 처음에는 당황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일제침략을 혹독히 받았던 우리 민족의 일본에 대한 감정과 같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대만인의 심서이기 때문이다. 대만인들은 오늘날 일제침략의 뼈아픈 심서를 거의 가슴에 갖고 있을 리가 없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아니 그 반대의 심서가 널리 퍼져 있음에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첫째로 대만사람들은 사실상 중국본토 사람과 혈통은 물론이고 문화가 다르고 사실상의 이민족이다. 그리하여 중국본토에 애착심도 없는데다가 역사상 중국본토의 피해만을 입었다. 그러나 일본에 할양된 뒤에 일본은 중국본토 사람보다는 훨씬 수준 높고 격조 높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대만사람에게 베풀었다. 대만사람들은 어차피 중국본토나 일본사람들에게나 지배당하는 객체였는데, 중국인들은 사실상 버려진 땅이요 천대시하는 땅으로 대했으나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중국인보다는 훨씬 낫게 대만을 다스렸다. 대만사람들의 심서는 중국본토가 생모(生母)로서 자식을 천대한 어머니라면, 일본은 양모(養母)로서 생모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크게 드는 입장이었다.(요즘 중국공산정권이 대만을 내놓으라는 것은 낳은 자식을 버린 생모가 자식이 잘 자란 것을 보고 내놓으라는 부도덕 행위 그대로이다.) 대만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대만사람들의 독립의지가 백번 이해되는 일이다.
둘째로 대만사람들은 청일전쟁 이후 50년간에 걸쳐서 확실한 일본인으로 지냈기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본어를 잘 하고 사실상 일본문화에 젖어 살았다. 현재의 이등휘 대만총통도 교또대학 농업경제학과를 3년간 유학했던 인물이고, 일본문화를 확실히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대만인들은 우리 민족보다는 상대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일본인이 되었고 일본문화에 동화되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구가 오늘날에 있어서도 일본과 일본문화를 동경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셋째로 대만인들은 만약 공산중국의 공격이 있다고 하면, 공산당의 지배를 받느니 외국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까 원초적 뿌리의식이나 민족심서가 우리 민족이 우리의 나라에 대해서 갖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외국으로 가려는 대표적으로 선호되는 나라의 하나가 일본이다. 많은 외국 사람들은 애초에는 이해를 못하나, 대만의 원초적 역사를 알면 널리 수긍이 가는 일이다. 대만인들은 공산중국보다도 일본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만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출발부터 끝까지의 50년간이 우리 민족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넷째로 대만인들은 현대시대에 있어서도 일본과 매우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대만사람들은 일본이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까지는 공식적 수교관계에 있었고 중국본토에는 가지도 못했었다. 따라서 50년간의 일본생활에 더하여 끊임없는 교류와 친선이 이어졌던 것이다. 특히 일본은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도 우리의 노태우 정부가 사실상 대만에 사기를 치는듯한 외교행각을 벌이며 대만을 우롱하듯 하는 듯한 졸렬한 일이 없었다. 대만인들은 끊임없이 일본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대만인들은 공산중국에 귀속된다면 지옥에 간다는 심서를 갖고 있고, 일본에는 그 반대의 심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로 대만은 산업관계에 있어서도 철저히 일본과 상하관계에 있다. 일본의 부품공장이 대만이라고 해도 된다. 사실상 대만은 그렇게 하여 외환보유고 1위 국가를 만들었고, 기꺼이 일본의 부품공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대만을 그렇게 이끌었다. 대만이 극히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높은 소득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외환보유국이 된 데에는 일본의 번영을 공유하는 부품공장형 중소기업 경제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대만과 일본은 커다란 한 나라요, 커다란 경제공동체에 가깝다.
참고문헌
◎ 나국환,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국대학교, 2011
◎ 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문화홍보원,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향하여, 외교통상부, 2003
◎ 이종훈, 동북아시대 한일경제협력의 신좌표와 방향 , 민주문화아카데미, 1992
◎ 전인영, 동북아 군사정세 전망과 한국의 안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2002
◎ 장은주, 동북아시대 정부역할의 제고 : 한국과 일본의 지방분권화개혁, 한국행정학회, 2003
◎ 최혜실, 동북아 시대 구현을 위한 사회문화적 협력, 구보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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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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