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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고][몽골][문화]몽고(몽골)의 약력, 몽고(몽골)의 기본정보, 몽고(몽골)의 문화, 몽고(몽골)의 교육, 몽고(몽골)의 보건, 몽고(몽골)의 징기스칸(칭기즈칸), 몽고(몽골)의 축제(나담축제), 몽고(몽골) 신앙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몽고(몽골)의 약력

Ⅲ. 몽고(몽골)의 기본정보
1. 수도
2. 인구
3. 기후
4. 면적
5. 주요민족
6. 주요언어
7. 종교

Ⅳ. 몽고(몽골)의 문화

Ⅴ. 몽고(몽골)의 교육과 보건

Ⅵ. 몽고(몽골)의 징기스칸(칭기즈칸)

Ⅶ. 몽고(몽골)의 축제(나담축제)

Ⅷ. 몽고(몽골)의 신앙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최근 10여 년 사이에 불교가 살아있는 종교로서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반하여, 샤먼들의 활동 재개는 민족주의 정서에 편승한 측면이 강할 뿐 아니라 상당 부분 박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근 샤머니즘의 부활을 일반인들의 욕구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이를 살아 숨쉬는 신앙으로 이해하려는 일부 논자들의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최근 몽골인들의 샤머니즘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신앙으로서가 아니고 전통문화로서의 샤머니즘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몽골인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역사상 처음으로 혹독한 종교탄압을 경험했고 시장경제의 도입과 함께 샤먼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몽골 샤머니즘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Ⅸ. 결론
몽고인들은 인생 최대의 쾌락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봄날에 준마를 타고 매를 손에 들고 사냥터에 나가서 매가 날아가는 새를 잡는 모습을 보는 데 있다고 대답한다고 할 정도로 사냥을 즐긴다. 따라서 이들은 고려를 정복한 뒤 수차례에 걸쳐 사냥에 쓸 매를 바치게 하였고 고려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매의 사육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을 설치하게 된다. 응방은 충렬왕 때 설치되었는데 책임자에게 종삼품에 해당되는 벼슬을 줄 정도로 중시하였다. 매사냥은 매가 사냥감을 공격하는 힘과 기교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매를 잡는 것과 훈련을 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원나라 황제는 매의 사육법과 매사냥에 정통한 달달( 동몽고에서 살던 몽고계 유목민)의 응방자(鷹坊子)를 수십 명 고려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매사냥뿐 아니라 멧돼지나 곰, 사슴도 즐겨 사냥을 하여 원종 때에는 호랑이를 잡으러 원정을 오기도 하였다. 원나라에 볼모로 갔던 충렬왕은 이들에게 영향을 받아 사냥을 즐겼고 이후 역대 왕들의 사냥기록은 고려사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 충렬왕과 우왕은 사냥에 매우 집착하여 여러 폐해를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냥의 발달은 살생을 금기시 하는 고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즉 불교를 숭상하여 살생을 금지하고, 육식을 절제하였던 고려인들은 사냥을 즐기게 되면서 더 이상 살생을 죄악시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충렬왕은 매사냥을 즐겨 금원에 큰 집을 짓고 장공,이평을 시켜 매를 기르게 하였는바 왕이 날마다 꼭 두 번씩 와 보았으므로 두 사람은 성안의 닭과 개를 매 밥으로 무수하게 죽였다. 는 기사나 마을 골목에 나가 놀면서 개를 쏘아 죽였는데 거의 날마다 개와 닭을 쏘아 죽였기에 서울 안에는 개와 닭이 거의 없어졌다는 우왕의 기사는 생명을 중시하여 사냥을 금지시키고 심지어는 고기반찬도 올리지 못하게 한 전 대의 왕들과는 달리 더 이상 생명을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살생을 즐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냥의 발달은 육식문화의 발달을 가져온다. 빈번한 사냥으로 육식의 기회가 늘어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기의 맛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냥의 발달은 도축법(屠畜法)의 발달도 가져온다. 짐승의 껍질을 벗기고 뼈를 갈라낼 기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고려의 도축법은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의하면 도축하고자 하는 짐승의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죽이거나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다 끊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 내기 때문에 고기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몽고인의 도축법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들은 도축할 양의 앞다리를 묶어서 눕혀 놓고 예리한 칼로 하복부에 세로 10㎝ 정도의 칼 자리를 낸다. 여기를 통하여 손을 심장부까지 밀어 넣어 대동맥을 눌러 비틀면 양은 즉사하게 된다. 피는 한 방울도 밖으로 흐르지 않는다. 간장심장 등의 내장은 모두 식용하고 흉부에 고이는 피도 국자로 퍼서 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응방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의 먹이를 대기 위하여 개와 닭을 수시로 잡고, 사냥에서 잡은 짐승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발달된 도축법을 익히게 되고, 그 결과 고기의 맛도 향상되어 육식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그룸 그르지마일로 저, 김기선 외 1명 역, 몽골과 오랑캐 유목제국사, 민속원, 2008
궁협순자 저, 조병학 역, 최후의 몽골유목제국, 백산출판사, 2000
이안나, 몽골인의 생활과 풍속, 첫눈에, 2005
전지명, 이것이 몽골이다, 집문당, 2007
장장식, 몽골민속기행, 자우출판사, 2002
J AMARSANAA, 몽골의 정부조직과 법체계, 한국법제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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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08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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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7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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