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철학사 - 철학 이전 이야기(철학의 탄생), 고대철학의 역사 구분 및 철학자 개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 희랍철학의 사상가들, 헬레니즘과 로마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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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고대철학사 - 철학 이전 이야기(철학의 탄생), 고대철학의 역사 구분 및 철학자 개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 희랍철학의 사상가들, 헬레니즘과 로마 철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철학 이전 이야기-철학의 탄생(BC. 9~7세기)

2. 고대철학의 역사 구분 및 철학자 개관
1) 시대 구분
2) 인명 소개

3.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소피스트 이전의 자연철학자들)

4. 희랍철학의 사상가들
1) 소크라테스 (Socrates)
2) 플라톤 (Plato)
3)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5. 헬레니즘과 로마 철학
1) 달라지는 세계와 철학자들
2) 스토아학파(금욕주의, 도덕주의)
3) 에피쿠로스학파(쾌락주의)
4) 회의주의와 그 밖의 학파

참고자료

본문내용

고, 뜻을 바꾸어 회군하기로 했다. 그는 바다 끝까지 정복하고 싶었으나, 그 뜻을 포기하고 돌아가 점령한 모든 지역을 통치하는 일에 착수하려고 생각을 바꾸었다.
회군하던 도중에 알렉산더는 역병을 얻고 치료를 받았으나 객지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그의 꿈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고, 장병들은 흩어져 귀가하는가 하면, 점령당했던 국가들은 앞다투어 점령 이전의 국권 회복에 나섰다.
아테네도 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다음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세계는 모든 질서가 혼란과 파괴를 모면할 길이 없었다. 철학을 중심삼는 학문의 세계에도 과거에 없었던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는 그리스의 아테네가 세계적인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나,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제각기의 학문이 다시 출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역시 그리스적이었으며 아테네의 철학이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가 유일한 철학의 본고장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테네의 철학이 세계적으로 보급,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매한 철학의 체계는 다시 탄생될 가능성이 없어졌다. 그런 것을 뒷받침할 사회적 여건이나 정신적 분위기가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상주의는 영구히 자취를 감추는 분위기가 되었다.
따라서 철학의 체계성이 단편적인 내용으로 바뀌며, 이론적인 학설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윤리성이 강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진리가 무엇인가 함보다는 어떻게 지혜롭게 사는가가 문제였고,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은 처세술로 환원되는 경향이 되었다. 학문은 높은 교양으로 만족하는 풍조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과거와 같이 위대한 철학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상가들이 모여 한 학파를 형성하는 것이 자연적인 추세가 된다.
이런 여건 밑에 태어난 몇 가지 철학사조 가운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속된 하나는 스토아 철학의 계통이었다. 특별히 주목할 개인 철학자는 없었으나, 수많은 철학자들이 대중적 호응을 받으면서 BC 300년경부터 로마말기까지 계승되는 철학유파의 하나가 되었다.
2) 스토아학파(금욕주의, 도덕주의)
스토아 철학체계는 키티온의 제논이 만들었다. 그는 상인으로서 아테네로 가다가 바다에서 재산을 잃어버렸다. 견유(犬儒)학파의 크라테스는 제논을 위로하면서 물질 재산이란 인간의 행복에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 제논은 아테네에 머물면서 자신의 철학을 세우고 가다듬은 뒤 스토아 포이킬레(여기서 스토아주의라는 이름이 나옴)라는 공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제논은 인간 행복의 기초는 (자기 자신과) '합일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훗날 정식으로 "자연과 합일하여 사는 것"이라고 바뀌었다. 인간에게 유일한 선은 덕(德) 가지는 것이며, 부나 가난, 건강이나 병, 삶이나 죽음 등 다른 모든 것은 아무 관계도 없다. 모든 덕은 올바른 인식에만 기초한다. 즉 자제는 올바른 선택에 대한 인식, 인내는 무엇을 참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 정의는 '분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다. 모든 악의 원인인 정념은 무엇이 참으로 좋은지를 잘못 판단한 결과이다. 세계는 신의 Logos(본래의 뜻은 '말' 또는 '이야기'임)가 지배한다. 이 로고스가 세계를 완벽하고 질서있게 유지한다. 인간은 이 질서에서 벗어나거나 이 질서에 저항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질서를 교란할 수는 없고 자신을 해칠 뿐이다.
3) 에피쿠로스학파(쾌락주의)
제논과 같은 시대의 에피쿠로스는 제논에 반대한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여러 면에서 타당하다. 스토아 학파가 쾌락과 고통은 인간의 행복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 반면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행복한 생활의 본질로 삼았다. 스토아 학파는 신의 섭리가 있다고 믿었으나 에피쿠로스는 신들이 인간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두 철학은 이처럼 대조적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똑같다. 비록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좋은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결코 방탕한 생활과 주색잡기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한 것은 소박한 쾌락이었다.
4) 회의주의와 그 밖의 학파
엘리스의 피론이 창시한 회의주의 학파는 아무도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자기가 감각으로 지각한 것이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피론은 자기 생각의 실천적 결론을 철저히 수행했다. 심지어 그는 거리를 걸을 때 마차나 그 밖의 장애물을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실한 제자들이 항상 따라다니며 그가 다치지 않게 했다고 한다. 피론을 지지한 후기 인물인 엠피리코스(AD 2~3세기)는 〈독단론에 맞서 Pros dogmatikous〉라는 대작을 써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는데, 그 덕분에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많은 글이 보존되었다. 데이비드 흄과 이마누엘 칸트는 고대철학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을 섹스토스 엠피리코스의 저서에서 얻었다. BC 4세기에 생긴 아테네의 모든 철학 학파와 분파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교도적 성격을 이유로 AD 529년 폐쇄 명령을 내린 고대 말기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약 1,000년에 걸친 이 기간에 늘어난 새 학파는 신피타고라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뿐이었다. 그 중에서 신플라톤주의가 철학의 역사에는 훨씬 더 중요했다. 신플라톤주의는 주로 플로티누스의 연구에서 나온다. 플로티노스는 저서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의 철학은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그의 글을 정리하여 묶어 내놓은 〈엔네아데스 Enneads〉를 통해 알려져 있다. 비록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을 연구함으로써 나온 것이지만 당시의 종교적신비적 경향과 일치하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철학이다. 플로티노스는 존재에 여러 층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중 가장 높은 층은 일자(一者) 또는 선(善)의 층이며 이 두 층은 동일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는 없다.
참고자료
한권으로 보는 서양철학사 100장면. 김형석 지음. 가람기획
함께 가보는 철학사 여행. 고사까 슈우헤이 지음. 방준필 옮김. 사민서각
  • 가격2,3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4.03.29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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