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갖고 내부자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주변부에서 표류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망각해서도 삭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존재하는 이들은 주변부를 완전히 타자화하게 된다. 외부적인 힘과 상황에 의해 주변화된 사람들은 그것의 효과를 불문하고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해보자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대학 시간 강사도 크게 보면 비정규직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교수 임용에 실패한 시간 강사가 목숨을 스스로 끊으면서 교수직 하나가 3억 원에 거래되는 세태를 통탄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적이 있다. 대학 교수는 지식인으로서 상아탑을 지휘하는 최고의 자리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 자리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통과한 사람과 통과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 부정한 방법으로 그 문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간 경우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주변과 중심의 문제는 크게 보면 교육 시스템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높은 교육열을 보이는 것은 차별화된 교육과 그로 인한 비교 우위 획득으로 중심부에 진입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다. 그 ‘중심부’라 함은 절대적 의미라기보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를 전제하는 상대적 의미라 할 수 있다. 중심부를 향한 치열한 경쟁은 영어 유치원 열풍, 초등학생 사교육 열풍에서 시작해 입시 학원 시장의 비정상적 확대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중심부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곧 패배로 간주하는 획일적 사고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사회 속의 모든 개체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층위에서 존재하는 개체들 각자의 고유한 가치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느 좌표에 서 있는가를 기준으로 그 가치를 속단해 버리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이 문제이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편견이나 취향의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먼저 중심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생각들일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최소의 자원으로 신속한 판단을 내리려는 무의식이 발현된다.
어떠한 경우든 그러한 사고의 작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공통적인데, 고정된 사고의 틀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를 교정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흘러가는 고정 관념, 편견에 휩쓸려 버리면 결국 주변부에 있든 중심부에 있든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 사람의 대담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모든 고통이 영혼을 정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많은 사람들에게서 고통은 영혼을 부패시킨다. 고생이 인간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과 매개될 때, 그때 고통은 우리를 넓고 깊게 한다. 한 사람의 정신이 자기의 아픔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발견하고 타인의 슬픔 속에서 자기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고통은 인간의 정신을 자기의 비좁은 골방에서 해방시켜 보편적 존재의 큰 바다로 나아가게 한다.
- 김상봉, 서경식 대담 <만남> 중 김상봉의 서문
즉,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비로소 주체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서경식, 김상봉의 대담은 개인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데 급급한 사람들에게 타자에 대한 이해를 권유한다. 이를 토대로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 나아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해 ‘우리’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