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역시 지배적 문화 집단의 일원인 이상 그렇게 타자화하도록 길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는 닉의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닉의 타자화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신의 우월성과 지배력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닉은 개츠비처럼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에게 상속될 재산은 톰의 상속 재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고, 나이는 점점 많아지지만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그가 자란 환경 속에는 닉 자신이 느끼기에 자신보다 우월한 친구들이 많았을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계급에서 미묘한 차이가 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닉은 자신이 (타자화한 소수인종에 대한)우월성에 근거해 지배력을 행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소수인종에 대한 타자화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츠비
개츠비는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으로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엘리트 집단에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라는 문화적 이방인이다. 물론 개츠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문화엘리트 집단에 포함될 만한 두 가지 중요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일단 그는 서양 백인집단에 속해있으며, 해변에 대저택을 가지고 있고, 매일매일 뉴욕에서 가장 성대한 파티를 주최하는 부자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식민주체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츠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비록 그가 부자가 되었어도 그것은 도덕적인 방법을 통해 얻은 부가 아니기 때문에, 데이지가 속한 집단, 즉 문화엘리트 집단에 어울릴 만한 혈통이나 계급성분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수많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 집단에 애써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개츠비는 그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문화와 적대적인 또 다른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끊임없이 지워내고자 한다. 예를 들자면, ‘제임스 개츠’ 라는 이름을 버리고 ‘제이 개츠비’로 살아간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개츠비는 또한 과도한 모방을 통해 자신이 속하지 못 할 문화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의 텍스트에도 드러나듯이, 그는 생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의식주와 행동 등을 세심히 모방하려 한다. 예를 들어, 톰과 닉을 비롯한 남자들에게 ‘Old sport'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이러한 모방은 ’고향이 아닌 듯한 낯섦‘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모방은 한 개인이 정신적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문화를 찾아 나서는, 일종의 고향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모방은 자기 자신의 열등성을 확신하는 데서 비롯되는 시도이기 때문에,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문화 안에서 고향을 발견하고 또한 추구하도록 만든다. 『비평 이론의 모든 것』, 로이스 타이슨 지음, 윤동구 역, 앨피, 2012, 906쪽
개츠비는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다른 존재자를 타자화 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타자화를 하는 인물이다. 그는 모방을 통해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문화를 끊임없이 욕망하면서, 그 문화의 가치에 위배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시도(개명과 같은 것들)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톰 뷰캐넌
톰은 이 소설에서 상류문화집단에 속해있는 전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비신사적인’ 행동들을 일삼고 품위도 갖추지 못했지만, 인종·민족성·사회경제적 계급·젠더·가문·교육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톰은 백인우월주의자 이면서 동시에 계급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톰은 자기보다 낮은 사회적 계급에 속한 이들을 모두 업신여긴다. 그리고 그가 업신여기는 대상 가운데는 갑자기 많은 돈을 번 사람도 포함되는데, 그 중에는 물론 개츠비도 포함된다. 그가 개츠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했던 “갑자기 떼돈을 번 작자들 중에 거물 밀주업자가 많다.”(114/155;6장)는 말에는 자신처럼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사람이 아닌 스스로 부자가 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는 함의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톰의 여성편력을 통해 계급차별주의와 식민주의적 심리 사이의 연관성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톰은 자신과 같은 문화에 속한 여성이 아닌 노동계급 여성만을 꼬드긴다. 머틀 윌슨 뿐만 아니라 호텔 청소부 등과 같은 노동계급의 여성들에게만 추파를 던진다. 톰이 이 같은 여성들에게 흥미를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무력함 때문일 것이다. 톰은 이들을 단지 성적 대상에 불과한 ‘나쁜여자’로 여긴다. 이러한 ‘나쁜 여자’들은 데이지나 조던 같은 ‘착한 여자’와는 별개의 범주에 속하고 사회적 지위도 열등하므로 톰에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이 상위 계급 여성만큼 존중받을 자격이 결코 없는 것이다.
톰은 상류 문화적 공동체에 속해있으며, 그 공동체에서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지위의 인물인데, 왜 굳이 자신보다 하위의 계급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타자화 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 해답은 톰이 인종차별적이고 계급차별적이며 성차별적인 견해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데에 있다. 이 같은 옹졸한 태도를 거듭 되풀이하여 나타낸다는 것은 톰의 내면에 특정한 심리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비평 이론의 모든 것』, 로이스 타이슨 지음, 윤동구 역, 앨피, 2012, 914쪽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톰이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안정감을 느낀다면 굳이 자기의 우월함을 보여 주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톰은 사실 중서부 출신으로, 그가 중서부에서 태어난 이상, 동부의 오래되고 부유한 명문가 출신들에게만 주어지는 문화적 지위를 결코 얻을 수 없다. 같은 책, 915쪽
다시 말해서, 톰이 굉장한 부를 가지고 있고 동부의 명문가들 보다 더욱 호화롭게 살아간다고 해도 결코 동부의 명문가들이 누리는 문화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톰의 심리적 상황은 개츠비와 비슷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로 인해 톰의 불안함은 커져만 갖고 우월 의식을 드러냄으로서 그 불안함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