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서부지역의 마한 분구묘 호남지역의 분묘유형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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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택구, 2008,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마한 분구묘」, 『한국고고학보』66, 한국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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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2000, 「호남지역의 분묘유형과 전개」, 『호남고고학보』11, 호남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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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연대는 3세기 중엽이 하한이 될 것이며, 상한연대는 기원전 어느 시점까지 올려 볼 수 있다. 전기의 중심묘제인 주구묘는 그 구조나 출토유물에서 전혀 달라 계속성을 찾을 수 없다. 준왕의 남천과 관련시켜 토착 마한인에 의해 축조되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중기의 분묘는 주구의 연접을 통해 평면적에서 입체적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이형분구와 방형의 저분구가 축조된다. 그 시기는 3세기 중엽부터 4세기 전반까지로 백제의 고대국가 성립과정에서 급격히 마한세력을 경략하게 되는 사실과 관련지을 수 있다. 또한 한 분구 내에 토광묘, 옹관이 함께 다장으로 이루어진다. 토광묘(목관과 목곽포함)와 옹관묘가 혼재되는데 처음에는 토광묘가 중심부에 안치되어 주가 되고 옹관이 종으로 매장되지만 후에는 토기제작기술의 발전에 따 이러한 주종관계가 뒤바뀐다. 중기의 분묘 출토유물은 이중구연호가 감소하거나 사라지는 반면 영산강유역에서는 양이부호, 경부에 장식이 없는 장경호, 유공광구소호가 새로운 기종으로 등장한다.
후기는 분구의 평면형태가 정형화와 대형화된 방형과 원형으로 축조되며 U자형의 전용옹관이 주 매장주체부로 안치되며 그 시기는 4세기 전반에서 5세기 후반에 해당된다. 이른 시기의 것은 전용옹관이 주 매장주체부를 상하 중첩되기도 하지만 늦은 시기의 것은 옹관과 더불어 석실분도 한 분구내에 안치되어 백제세력이 영산강유역에 진출을 의미하는 고고학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출토토기는 원저호와 경부에 장식이 있는 장경호, 유공광구소호가 증가하며 직구호, 개배, 고배 등이 새로운 기종으로 등장하고 원통형토기도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부장유물에서 위신재가 나타나고 있어 계층분화가 뚜fut하게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질문
1. 본 논문의 분기 설정에 있어서 조기에서는 송국리형토기와 점토대토기가 유적을 달리해서 발견되고 있지만 늦은 시기에서는 두 기종의 결합양상이 보이며, 분묘의 구조 또한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고 했다. 이 후 전기가 되면 주구묘가 중심적으로 축조된다고 했는데, 이러한 분묘 구조의 통일화는 송국리형토기와 점토대토기 중 어떠한 토기문화의 영향인지 궁금하다. 또는 이 두 토기문화와 관련이 없다고 한다면, 어떠한 토기문화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2. 이들 분묘유적과 관련하여 호남지역에서 분묘유적을 축조한 세력들의 실생활터전에 관하여, 주변의 집자리 유적들은 어떠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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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1.21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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