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시와 비평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해방기 시와 비평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해방문단의 시사
(1) 해방 직후 시단의 두 경향
(2) 경향시
(3) 순수시

2. 해방문단의 비평사
(1) 해방1기 : 좌익 전횡기
(2) 해방2기 : 좌우익 논쟁기
(3) 해방3기 : 우익 정착기

Ⅲ.결론

본문내용

)의 「현단계의 정치문화와 혁명문예」 (『예술문화』, 1946.1)등과 박치우가 민족문화건설전국회의에서 발표한 「민족문화 건설과 세계관」등이 문제시된다.
대중화문제도 이 무렵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1930년대에 전개되었던 대중화론에서 크게 달다진 것은 없다. 정철의 「계몽운동과 작가적 임무」(『예술문화』,1946.1)에서는 각 공장에다 \'계몽판\'을 설치해두고 벽신문 .벽소설 등을 첨부하자는 의견과 작가들이 난삽한 숙어를 피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김영석은 「문학자의 새로운 임무」(『백제』,1947.2)에서 문학의 대중화를 외치면서 ,그 구체적 방안으로 모든 문학자가 문화공작자로서 인민대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문맹\'은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들이 목표로 하였던 것은 대중들의 인간적 자각 ,계급적 자각, 민주의식의 함양 등이었다.
해방 1기의 다양한 주장들이 하나의 채널로 통일되어 ㅂ조직적. 집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전국문학자대회에서 보고 및 토론들이다.
전국문학자대회의 의의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민족문학건설의 중요성을 제기한 점이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의 소탕과 봉건주의적 유물의 제거로 요약된다. 둘째는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를 지적한 점이다. 파시즘이란 대체로 테러에 의한 독재라는 공통성을 지니면서 시민적 자유를 말살하며 군국주의나 국수주의의 사상을 선전한다는 점을 상정할 때, 당시 일본의 잔재 청산과는 별도로 이것이 강조되었던 것은 그만큼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한 증좌로 볼 수 있다.셋째로는 이 밖에도 국어문제. 계몽운동문제. 대중화문제. 창작방법론문제. 아동문학문제. 농민문학문제 등 당시의 주요 현안들을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보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 해방2기 : 좌우익 논쟁기 (1947.2-1948.8)
전술한 바와 같이 \'문맹\'의 구성원 중 구 \'문건\'파가 득세함에 따라 구 \'예맹\'파는 전자의 노선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 이들 예맹파의 이기영. 한설야. 한효. 윤기정 등은 이미 월북하여 1946년 3월 북조선예술총동맹을 결성하였으며, 이어 여타\'문건\'게의 이태준. 이원조 . 임화. 오장환마저 월북하면서 좌익진영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런 반면, 우익은 상대적으로 강세로 돌아서면서 ,앞에서 서술한 바의 문필가협회와 청년문학가협회를 모아 1947년 2월 12일 민족진영 문화인의 총결속을 위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다음날인 2월 13일 문화옹호남조선문화예술가 총궐기대회를 열면서 결속을 강화해갔다.
좌우익의 논쟁은 갈수로 치열해져 가고 그 양상 또한 얽히고설킨 모습을 보이는데 이들을 개인적인 논쟁과 집단적인 논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 소위 \'순수논쟁\'이다. 순수논쟁은 2차에 걸쳐 일언나면서 집단적인 이론논쟁과 밀접하게 연결된 채 전개된다. 순수논쟁의 기원은 멀리는 1930년대 말의 유진오와 김동리의 순수문학논쟁 등으로, 가까이는 김남천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좌우익의 집단적인 논쟁에서 좌익의 논리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는 김영석. 박찬모 등의 평론과 『문학평론』3호에 실린 「문화옹호 남조선문화 예쑬가 총궐기대회 특집」에 실리 김남천. 임화. 오장환의 글이 있다. 좌우익의 집단적인 논쟁에서 우익의 논리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이 김동리의 「문학운동의 2대 방향」(『대조』,1947,5)과 조지훈의 「정치주의 문학의 정체-그 허망에 대하여」(『백민』,1948.4)였다. 김동리의 글은 좌익측의 문학 강령인 봉건 잔재의 청산 , 일제 잔재의 소탕, 국수주의의 배격 3개 사항을 거부하면서 우익측의 강령이라 할 3개 항목을 제시. 천명한 글이다.
3) 해방3기 : 우익 정착기 (1948.8-1950.6)
이제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 ,대부분의 좌익들의 월북, 몇몇 좌익의 전향 등으로 좌익은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우익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1948년 12월 27-28일 양일간 우익 문화인들은 \'\'민족정신앙양 전국문화인 총궐기대회\'를 개최하여 정부의 미온적인 좌익 견제에 항의를 표시한다. 세계관과 문학관을 위해서 활발하던 해방 이후의 우리 문단의 비평 활동은 이 무렵부터 논쟁의 열기를 잃고 초보적인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새로 진주한 외세 또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강압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Ⅲ. 결론
해방의 문학사적 의미는 혼란기에 민족문학의 수립이라는 진로의 모색단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시대 역사는 식민지 시대와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문인들을 비롯한 그 시대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더 이상 강요된 ‘남의 것’에 억눌리지 않고 떳떳하게 ‘우리 것’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기쁨으로 벅찼겠지만, 실상은 피폐한 현실 상황 속에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근본적으로는 자주적인 독립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것이겠지만 만약이라는 조건은 없다는 역사의 특성상, 최근에 친일파인명사전 나오고 하는 등의 노력은 그런 점에서 논란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잔인한 시대를 살면서도 굳건히 옳은 것을 지켜냈던 사람들을 우러러 보는 동시에, 시대의 억압을 끝내 견뎌내지 못한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들의 변절 행위를 마냥 비난하는 것도 속이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문학자가 붓을 꺾어 던지고 농촌으로 또는 여러 가지 직장으로 도피했던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하랴.
※ 참고문헌
김윤식ㆍ김우종 외 34인(2002),「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박용찬(2004),『해방기 시의 현실인식과 논리』. 도서출판 역락
신동욱 편저(2004),『한국 현대문학사』, 집문당
오세영 외(2007),『한국 현대시사』, 민음사
임영천(2005), 『해방기 문학과 비평 담론』, 다운샘
김기림(1947),『시론』, 백양당
김용직(1989),『해방기 한국 시문학사』, 민음사
김영철(2000),『한국 현대시의 좌표』, 건국대학교 출판부
김병익(2001),『한국 문단사 : 1908~1970 』, 문학과 지성사
  • 가격1,6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6.04.25
  • 저작시기201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0073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