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발전행정론]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발전 분석보고서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비교발전행정론]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발전 분석보고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개 요
1. 일반현황
2. 역사문화적 기반


Ⅲ. 정부의 구조와 작동원리
1. 대통령 중심의 권력독점구조
2. 국외 관계
3. 정치경제 체제


Ⅴ. 정부관료제의 내부적인 관리역량


Ⅵ. 집중사례분석


Ⅶ.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조직은 내무부산하의 경찰청으로 내국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Ⅵ. 집중사례분석 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2005년 2월 안디잔 사당국이 사업가 23명을 체포한 것이 발단이 되어 12일 항의시위가 발생, 항의자들이 관공서와 경찰서를 습격하여 30명을 볼모로 잡게 되고 이어 진입하기 위해 출두한 군인의 발포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상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시위는 타지역으로 확산되고 14일에는 안디잔에서 동쪽으로 50km 떨어진 페르가나계곡의 카라수 마을에서 시위태가 경찰서와 세무서, 검찰청사 등 관공서를 습격, 방화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이들 시위는 이후 모두 진압되었지만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살해되었고 정부의 공식발표로는 176명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것을 추정된다.
당국은 체포한 사업가 23명이 아크라미야라는 이슬람 이단 조직의 멤버들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아크라미야는 안디잔의 수학교자 아크라미욘 욜도셰프가 1992년 이슬람 샤리아(성법)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이슬람 성도’라는 책자를 펴낸 것을 계기로 결정된 조직이다. 책자자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친미독재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고있던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고 이에 힘입어 이를 따르는 아크라미야라는 조직이 생격난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카리모프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이 된 것은 카리모프가 일관되게 정치의 탈이슬람화를 추진한 것과 2001년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협력한 일 때문이다.
안디잔 사태 초기,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변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일부 외신에서 관측한 바 있으나 강력한 군사정권의 개입으로 많은 희생을 낳은 채 마무리 되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안디잔 사태에 대해 실상을 짐작하면서도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중국까지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반군들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가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안디잔 사태 관련 주요 외신 등 언론 보도 종합
http://blog.naver.com/joyzion?Redirect=Log&logNo=40022618792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국가들의 혁명사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모두 15년 내외의 독재를 경험했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한 사례는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이 유일하다. 인터넷한국일보, ‘중앙亞 \'제2의 키르기스 사태\' 도미노 가능성은’, 2010/04/19
부정선거의혹(2005년)과 과도한 물가인상(2010년 4월)에 격분한 키르기스의 야당과 시민이 정권을 전복시킨 두 차례의 튤립혁명이 현대 중앙아시아 혁명사의 사실상 전부인 셈이다. 즉 이 이후 실패로 마무리됐지만 처음으로 미완의 시민혁명 시도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카리모프 정부는 독재를 지키기 위한 무리한 진압으로 결국 혁명의 싹은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잘렸다. 국제사회는 당시 외신의 접근을 막아가며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한 우즈베키스탄을 인권탄압 국가로 규정하는 등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정권을 강력히 규탄했다.
또한 외신들은 두 차례나 혁명을 성공시킨 키르기스의 사례가 우즈베키스탄과 같이 오랜 세월 독재를 참아가며 봉기의 에너지를 축적해온 인근 중앙아시아국가 민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다. 인터넷한국일보
반면, 소비에트 연방에서 오랜 세월 강권통치를 경험한 중앙아시아 국민 대다수는 독재자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에 젖어 있기 때문에 쉽게 시민혁명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많다. 키르기스스탄의 혁명 성공사례가 중앙아시아에 이른바 \'혁명 도미노\'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긴 아직 이르단 얘기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쉽게 혁명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Ⅶ. 결론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관한 일반적인 개요부터 하여 최근에 일어난 국가의 상황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구 소련의 식민 통치하에서 1991년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은 식민치하의 정치엘리트와 국가기구가 그대로 독립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강제력과 폭력부분이 과대하게 발전한 제3세계 국가의 저발전 원인에 그대로 해당되어 설명되어진다. 즉 과잉팽창한 국가의 주도 아래 소수 엘리트에 의해 국가운영이 이루어져왔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러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의 주도 아래 최근 새로이 경제발전의 성장을 꾀하고 있다. 그 발전모델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 역시 군부정권에서 중앙집권적 정책 위주로 경제발전정책을 실행해왔다. 이는 비교적 성공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경제발전모델로서 최근 우즈베키스탄은 이러한 한국의 발전모델을 벤치마킹하여 경제발전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주도의 발전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이 처한 빈부의 격차나 국민의 미성숙한 국민성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통치엘리트의 후진성 및 국민의식의 제고 등 질적 성장 또한 함께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듯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한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의 저발전 요인들을 모두 극복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제시하였던 통치엘리트의 후진성 및 국민의식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고민해보아야 할 과제인 것이다.
※ 참 고 문 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KIEP 전략지역 심층연구 논문집1: 중앙아시아 정치·사회·역사·문화, 2009-12-30
안디잔 사태 관련 주요 외신 등 언론 보도 종합
유재형, 우즈베키스탄 :미군기지 철수 요구의 배경과 전망, 수은해외경제 제24권 제9호 통권 제275호 (2005. 9)
pp.80-84
주 우즈베키스탄대사관, http://www.mofat.go.kr/missions/Uzbekis.nsf?opendatabase
인터넷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 글로벌윈도우 홈페이지, http://www.globalwindow.org
  • 가격1,6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8.03.18
  • 저작시기201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4974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