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의 구비전승과 놀이 [구비전승 여러가지 놀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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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민속의 구비전승과 놀이 [구비전승 여러가지 놀이 설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연되고 있다.
등불써기놀이는 등바루놀이와 더불어 추남 도서지방을 상징하는 풍어놀이이다. 다만 등바루놀이가 굴과 조개의 성수기인 음력 4월에 여아들에 의해 행해진 놀이라면, 등불써기는 섣달그름날 청소년들이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신밟기와 풍어제를 근간으로 성립된 이 놀이는 지난날 서해안 섬마을의문화적 특징이 잘 녹아 있다. 무엇보다도 풍물의 내용으로 준비되는 등불과 제사 후에 어패류를 부르는 모방주술적 유희는 등불놀이의 독특한 특징으로 여겨진다.
매사냥
음력 10월 초부터 해동이 될 때까지 길들인 매로 꿩을 잡는 사냥놀이. 옛 기록에는 방응(放鷹)이라고 하였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의 매사냥은 1998년 1월9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인 박정오에 의해 전통적인 방법의 매사냥이 전승해오고 있다.
매사냥은 왕, 양반층,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성인 남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 놀이로서, 산야를 뛰어다니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 매우 흥겨운 겨울철 운동이다. 한 해의 농사를 끝낸 후 농한기에 생활의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지면서 행했던 매사냥은 취미 활동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였다.
벽골제쌍룡놀이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용골마을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자신을 희생하여 벽골제를 지키고자 했던 단야 낭자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놀이로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행해지고 있다. 현재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벽골제 주변에 전승되는 설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쌍룡놀이는 논농사 초기에 발생한 향토신가로 생각된다. 수리관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일로 가장 기름지고 넓은 호남평야의 한가운데 있는 벽골제의 위상은 특히 높았다. 쌀을 많이 생산해야만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국가의 기틀이 튼튼해지므로 벽골제의 중요도는 매우 높았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던 벽골제를 둘러싸고 전승되던 제방공사와 용의 이야기에 후대에 와서 인간들의 애정 갈등이 추가되고 함께 얽혀지면서 놀이화한 것이다. 따라서 벽골제의 수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한 여인의 정신을 기리는 제사를 모시고, 농사에서 중요한 비를 관장하는 신격인 용을 등장시켜 풍년농사를 기원하고 있는 쌍룡놀이가 9월9일에 놀아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양주소놀이굿
경기도 양주지역에서 전승되는 소놀이굿. 주로 음력 8~9월에 하는 소놀이굿의 형태로 전하는 것이 이 놀이굿의 세시절기 의례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양주소놀이굿은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감놀이
제주도에서 하는 도깨비에 대한 굿. 1971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도깨비를 도채비라고 하는데, 무속에서는 도채비라 부르지 않고 영감 또는 참봉이라는 경칭으로 부른다. 그 중 영감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감에 대한 굿은 놀이굿 형태를 취하여 심방(무당)들이 연극적인 대화와 행위로 전개하기 때문에 영감놀이는 의례임과 동시에 연희이다.
영감놀이는 호색적인 도깨비가 여인에게 따라붙어 준 병을 고치는 유감주술적인 굿이다. 그러면서 양반을 풍자하는 연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제주 최고의 목민관인 목사는 정3품과 정3품 벼슬의 호칭이 영감이다. 그러니 제주목민관이 술과 고기나 얻어먹고, 여자나 좋아하여 따라 붙었다가 제주 명산물이나 한 배 가득 싣고서야 떠나가는 옛 양반의 모습을 굿 속에서 은연중에 풍자하고 있다.
처용무
섣달그믐의 나례(儺禮) 또는 궁중이나 관아의 의례에서 처용의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아내는 벽사적인 춤. 1971년 1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해마다 처용문화제에서 공연되고 있다.
처용무는 신라시대에는 원래 무속의 굿에서 탈을 쓰고 춤추는 축귀적인 의식무였다. 수신과 용 신앙을 바탕으로 하면서 부정을 없애려는 원초적인 정화의식의 탈춤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 점차 궁중의식무로 자리를 잡아 연말의 나례나 상층의 의례 때에 추어지면서 기층 집단의 의식무가 상층의 의식무로 자리 잡게 되는데, 춤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주술종교적인 종합 가무극의 형태였다. 처용무는 붉은 옷을 입은 진자들의 춤, 십이지신의 춤, 방상씨 춤, 그 외에 학춤, 연화대, 불가의 춤과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고려 말기에 점차 상층의 연회에서 여흥으로 춤을 추게 되고, 나례 때에는 산악백희가 결합되면서 점차 오락적인 가면무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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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3.10
  • 저작시기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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