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로를 바꾸는 등의 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자기소개서나 생활기록부에 추가할 수 있는 한 줄이 소중한 때였으니 선생님이 우리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주려고 한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당시의 여러 가지 활동은 필자에게 무엇이든 해보아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혹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일은 재능을 가진 당사자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상대가 나의 호의를 진심으로 받아들일지 어쩐지도 알 수 없음으로. 확실한 특기를 알 수 있도록, 적어도 좋아하는 분야를 알 수 있게 활과 화살을 준비해주셨다.
성인이 된 후에 들었지만 선생님께도 모험이었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닌가 고민이 되었고, 우리 반이 다른 반에 비해 성격도 활동 부분도 유독 튀었던지라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고. 선생님만의 역경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우리 개인의 성과에 집중하는 동안 모든 아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외부의 시선과 싸우던 우리의 보호자 덕분에 안전하게 싸우고 화해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가 주몽이라면 선생님은 유화였다.
Ⅲ. 결론
세상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게는 그들을 킹메이커로 만들어준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으레 말하는 위인의 축에 들어가지 못하고, 유화처럼 고난을 이겨낸 건국신화의 주역임에도 빛을 받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왕을 낳는 역할에서 그치고 말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와 부인이라는 글자 속에 숨겨진 역사와 전설, 개인의 삶이다.
우리는 종종 해모수가 하늘신의 아들이고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니 즉 주몽이 하늘의 아들이다. 라는 사실에 치중해 그가 무책임하게 아이와 아내를 두고 떠난 이후부터는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는 부여시조의 아버지라고도 여겨지기 때문에, 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왕에게 정통성을 주려는 시도에 억울하게 바람둥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의 입장은 차치하고,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어머니이고 딸이고 누군가의 부인이기 전에 유화 자체의 업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선생님처럼 많은 유화들이 있기에 위대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라건대 스포트라이트 뒤쪽의 사람들도 소외받거나 축소되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