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장면과 제2공화국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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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그 생애와 역사인식의 형성과정
Ⅲ. 역사인식의 특성
Ⅳ. 조선교회사의 서술
Ⅴ. 맺음말

본문내용

런데 1961년 1월 대한중석 사장이 대한중석의 운영자금 획득을 위해 4백톤의 중석 재고품을 일본의 조총련계 회사로 알려진 '동경식품'에 팔기로 했으며 신파의 자금조달을 맡았던 오위영 무임소장관이 이에 관련하여 1백만달러의 커미션을 받기로 했다고 민주당 신풍회의 함종빈 의원이 폭로했다. 이로써 정계가 발칵 뒤집혔고, 특히 중석파동의 배후엔 장면 정권의 정치자금 확보가 개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어졌었다. 임영태,『대한민국50년사 1: 건국에서 제3공화국까지』, 308-309쪽. 덧붙여, 5·16 정권은 장면 정권의 부패를 대대적으로 조사해서 발표했지만, 재판 결과, 부패로서 처벌받은 것은 김영선 재무장관이 출장 중에 중고품 냉장고 하나를 어느 공무원에게서 선물받은 것뿐이었다. 대한매일특집연재『제2공화국과 장면』중 "김대통령 특별회고(하)"『대한매일신문』(1999년 6월 13일).
또한 개인적 특성으로 보아 장면을 과도기적인 상황에서의 역동적 지도자로는 약했다고 보는 평자들도 "누구보다 정직하고 깨끗한 지도자로서 권력의 공공성(公共性)을 중시하고 족벌주의를 배격"했으며, "법에 의한 지배와 게임의 원칙에 충실했으며, 인내와 관용으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다스리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인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진력"했고, "권력남용을 자제했고 국가기구(억압기구)를 대거 정비"했다. 즉, "정부가 작아져야 국민의 자유가 신장되고 정치참여가 증대된다는 점에서 장면 정권의 이러한 작은 정부 지향성은 정치발전론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정부가 시민부문의 투입기능을 존중함으로써 사회의 자율성이 고도로 신장"되었다고 평가한다.
) 김호진,『한국정치체체론』, 407-409쪽.
그리고, 그를 "안정되고, 제도화된 정치환경에 적합한 정치지도자"라고 평가한다.
) 예를 들면, 이정희, "제2공화국의 정치환경과 장면의 리더십," 261쪽.
이에 더하여, 장면이 지녔던 외교적 수완과 경제발전구상까지를 고려한다면, 그와 같은 지도자 타입 내지 리더십의 유형은 바로 지금과 미래의 한국 국민에게 하나의 바람직한 모델 내지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장면의 종교적·정치적 이상은 결국 5·16에 의해 좌초하고 말았을 뿐이라는 결과론 내지는 과거완료형의 시제(時制)로 묻어버릴 것이 아니다. 장면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한 정치가였으며, 비록 현실 속에서는 벽에 부딪쳤지만 그가 제시한 비젼, 예를 들면, "민주주의에 입각한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구현을 다시 한번 시도하고 있는 오늘"의 시점 및 앞으로의 한국의 사회와 정치를 이끌어주는 "이정표이자 좌표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 허동현,『건국·외교·민주의 선구자 장면』, 217쪽.
현재 및 미래 진행형 시제로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 제시된 비젼(vision)은, 비록 그 당시엔 깨어지고 말았으나, "어둡고 긴 군사독재의 터널을 지나오는 한국민 모두가 공유한 희망의 기억"
) 위의 책.
이었고 여전히 현재에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그리고 현실주의(realism)와 이상주의(utopianism)의 갈등은 역사 발전, 정치발전의 원동력이다. 역사학자 E. H. 카아(Edward Hallett Carr)가 말하듯, 현실주의는 현실에선 강하지만 결국은 벽에 봉착하게 되고, 이상주의는 현실에선 약하지만 벽에 봉착한 현실주의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면,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애당초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 갈등은 역사의 발전, 그리고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E. H. Carr의 다음의 글을 본 연구의 주제에 맞게 다소 응용하였다. 원문을 인용하자면, "Where utopianism has become a hollow and intolerable sham, which serves merely as a disguise for the interests of the privileged, the realist performs an indispensable service in unmasking it. But pure realism can offer nothing but a naked struggle for power which makes any kind of international society impossible. Having demolished the current utopia with the weapons of realism, we still need to build a new utopia of our own, which will one day fall to the same weapons. The human will will continue to seek an escape from the logical consequences of realism in the vision of an international order..." Edward Hallett Carr,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4), p. 93. 번역본으로는 Edward Hallett Carr(저), 이원우(역),『위기의 20년: 국제정치론서설』(서울: 아세아문화, 1985), 127쪽 참조.
장면 정권의 경우, 장면의 이상(ideals)과 이상주의적(utopian)인 민주화 실험은, 비록 그 당시엔 5·16 쿠데타로 인해 사라져 버렸지만, 길게 볼 때엔, 그 이후의 한국의 민주화를 가능케 했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젼(vision)을 앞서 제시하면서 스스로는 사라져버린 '촉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장면 서거 다음 해인 1967년 2월에 운석기념회에 의해 출간된) 장면 회고록의 제목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이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 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 복음 12장 24절).
여전히, 그리고 새삼스레, 여운을 길게 남기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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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7.05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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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9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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