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의 관계의 역사적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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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예언자 아모스의 사회 윤리와 정의. 사상
1.아모스의 시대 배경과 그 특성
2. 정치와 종교

Ⅲ. 종교 개혁 신학자 루터의 권력론
1. 루터의 권력론 구조
2.루터의 두 왕국론, 그 논란의 동기
3.권력의 한계론과 직능론

Ⅳ.사회복음의 대두
1. 라우쉔부쉬의 생애
2.사회 복음의 중심 사상-하나님의 나라
3. 사회 복음 운동의 평가

Ⅴ. 에큐메니칼 신학과 책임 사회의 이념
1. 책임 사회의 정의
2.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이념들

Ⅵ. 결론
1.신성과 인성
2. 교권과 정권
3. 모두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본문내용

세력이 다스리는데 '교황의 거룩한 권위'와 '황제의 권세'이다. 그런데 교황이 더 중요함은 군왕들도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후 교황 레오 3세가 800년 성탄일에 무릎을 꿇은 왕에게 로마 제국 왕관을 씌워 주었다. 이 대관식으로 말미암아 교황이 왕권을 주기도, 빼앗기도 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고, 이 사건은 황제의 권세와 교황의 권위 사이의 문제로 중세기 내내 논쟁거리가 되었다.
당시의 교회와 국가는 한 방패의 양면으로서 하나는 현세의 행복을, 다른 하나는 내세의 축복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제각기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의 꿈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11세기 말에 황제권 수호자들은 '왕권신수설'(The Divine Right of Kings)을 주장하며 나섰다. 그러면서 왕은 신의 관유로 제관식을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정점에 서서 '그리스도·왕'을 상징하며, 왕은 성별되어 그리스도의 '하늘'(神性)과 '땅'(人性)을 다 대표하기에 황제는 종교와 세속을 모두 다스리노라고 선포하였다. 이러한 황제권과 교회의 권위와의 우위 다툼은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군주론'(1318)이후부터 상호 불가침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 갔다.
단테와 동시대인이면서 놀랄 만큼 현대적인 마르실리우스(Padua Marsilius, ? 1342)는 '평화의 옹호자'(Defenser Pacis, 1324)를 내놓았다. 그는 이 과격한 저서에서 "국가는 그 권위를 백성에게서 받았으니 백성에게 군왕을 세우거나 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황권은 베드로가 아니라 콘스탄틴이 준 것이며. 교회의 모든 권리는 교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종교 회의가 갖는다"고 강변하였다. 이같은 주장으로 민주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이 마르실리우스의 사상은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3. 모두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이 소론을 맺으면서 잠시 교회 역사상 신성과 인성, 기독교와 국가, 교권과 정권 상호간에 빚어진 자기 중심적 주장과 논란들을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들은 종교 개혁기인 근대에까지 계속되어 온 사실을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교회와 사회는 다 함께 종말론적 긴급성을 공감하면서 시급히 지향해야 할 지상의 한 과제가 있음을 보아야만 한다. 그 종말론적 과제는 곧 '창조 질서의 회복'이 아닐 수 없다. 창조 질서의 교란, 생명의 변질과 중병의 징후들을 그야말로 종말론의 현실적 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종말론은 어김없이 우주적 스케일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신학하는 작업이나 생명 문화 운동은 생명 중심으로 또는 우주 중심으로 급선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위시한 생명의 존재론적 틀은 본래적으로 우주적 스케일로밖에는 다르게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종래의 신학하는 일은 압도적으로 구속사적 방법론에 치우쳐 있었기에, 역사에서 자연은 저 멀리 밀려나 '난 외의 것'(marginal thing)으로서 신학의 가장자리에 방치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언제나 구속사 이해를 위한 해석학적 도구로만 이용하는 데 불과했다." 이제 구속사 일변도의 신학에서부터 자연 경험 그 자체를 통하여 인간 역사를 조망하는 새로운 '우주적 신학'이 수립되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자연 신학의 수립을 위한 한 방법으로, 우선 신학하는 방법과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예술을 신학에 결합시키는 일이다. 그 이유는 예술이 갖는 본성적 태도와 그 정신의 근본 철학은 창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모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참으로 모방한다는 것은 곧 '성실'이요. '겸허'이며, 생명에 대한 '경외'이다.
따라서 자연을 겸허하고 성실히 모방하는 일은, 더 나아가 자연 그 자체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그의 의미와 섭리를 드러내어 그것을 고백케 한다. 그러기에 플라톤이 '공화국'(The Republic)에서 이러한 모방 성향을 들어 추방한 예술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그의 「시학」에서 예술인을 높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예술 철학에서 정의하는 예술의 본질은, 곧 예술은 일종의 인식 활동이요, 예술 작품은 지식의 한 형태라 한다. 정녕 예술인이 자연을 아무리 모방하여 경외한다 하더라도 결코 '우상'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자연을 보다 완전하게 어디까지나 '모방'하려 하면서 '아름다움'을 심화 혹은 승화시켜 갈 따름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면서 일깨워 주고, 자연은 하나님을 찬미한다. 확실히 '자연'과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협동체 내지 공동 주체이다. 이같은 사상은 동양의 삶을 가꾸어 온 자연의 '모성적 이미지'와 자연주의와도 상통한다. 몰트만(Jiirgen Moltmann)이 신비주의 사상에 대해 언급한 글 가운데서, "전자연은 느끼는 물화된 신의 사랑에 불과한 것"이거나, 그의 창조 의지의 원색이 굴절되고 탈색된 변문(變文)은 아니다. 주지하고 있는 대로 범재신론(Panentheism)'에서도 자연 혹은 우주는 하나님의 '몸'이라 한다.
이미 14세기에 신비주의 동정자들의 그룹인 '신의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저작인 '독일신학'(Theolgia Germanica, German Theology)에서 의미 깊은 말을 하였다. "만물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하나'이며, 그래서 그 하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모두'이다. " 따라서 하나님의 고통. 즉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악과 죄와 벌을 자신 안으로 감수하여 받아들임으로써 동시에 이것들을 지양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에게서 심화된 '의인론'도 종래의 신학의 인간 중심적 비평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 정히 이지러지고 병들어 신음하며 탄식하는 하나님의 우주 전생태계의 구원과, 종말론적 영광의 공동 상속자가 되기 위해 인간과 같이 자연도 의인화(justification)되는, "우주론적 칭의 신학"이 발전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와 사회가 공유해야 할 역사적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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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22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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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7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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