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모든것(다양한이미지자료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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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거북선의모든것(다양한이미지자료포함)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거북선의 탄생
① 이충무공 전서에 나오는 두 가지 거북선
② 이충무공의 거북선 건조지
③ 거북선 제작일지(난중일기)

2. 거북선의 구조
① 주요 길이
② 배의 내부구조

3. 임진왜란때의 거북선
• 주요해전에서의 거북선

4. 거북선의 특징
① 거북선 전투
② 거북선의 화력
③ 주요 해전 때 사용했던 무기들 - 거북선의 무기
④ 거북선의 기동성

5. 거북선에 대한 논란
① 이순신 장군이 쓰던 거북선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② 거북선은 어떤 곳에 침몰해 있을까?
③ 거북선은 철갑선이다?
④ 그외의 논란들

본문내용

정조때 설계도를 기준으로 임진란 당시 전투를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가 많이 보는 복원된 모형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관람하기 바란다. 즉 거북선의 외형은 정조때 발간된 이충무공 전서의 그림을 참고로 만들었다.
이들 모형에는 또 한가지 웃지 못할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모든 모형에 한결 같이 나타나는 무지막지한 "닻"이다. 거북선의 복원 모형에는 모두 앞문을 반쯤 열어 놓고 예의 그 무식한 "닻"을 내놓고 있는데, 이렇게 닻을 내 놓으려면 뭐하러 그 엄청난 장갑을 할 필요가 있는지... 글자 해석에만 관심 있는 국내 사학계는 충무공 전서의 거북선 그림에 닻이 나와있으니 당연히 그런 구조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이는 어림없는 소리이다. 당시 설계도와 비슷한 이 그림에는 닻의 모양을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꺼내 놓은 것이지 실제 전투때나 항해시 닻을 내 놓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 이기 때문이다. 우선 닻을 내놓고 항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보면 삼도수군 조련전진도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조선 해군의 정기 훈련을 그린 그림으로, 이 그림에는 모든 전선이 닻을 배안 두고 있지 선수에 삐죽 튀어 나와 있지 않다. 더구나 이 그림의 통제영 상선 (통제사의 기함)에는 선수의 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 닻줄이 보인다. 즉 닻을 감아 올린 것이다. 이 그림과 배의 설계도라 할 각선도본의 그림은 그 구조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각선 도본에는 닻이 그려져 있다. 즉 각선 도본에는 배 뿐만 아니라 닻도 함께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도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또한 거북선을 비롯한 전통 전함의 경우 모두 적함과 부딪혀 적함을 깨뜨리는 충파 공격을 자주 감행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닻이 삐죽 튀어 나와 있으면 충파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점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② 거북선은 어떤 곳에 침몰해 있을까?
거북선이 어느 위치에 침몰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조건을 갖춘 곳에 있을지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침몰선박 인양에 있어서는 신안 앞바다의 송·원대 무역선과 완도 어두리 앞바다 고려 초기 화물운반선의 귀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 두 침몰선은
첫째, 선체편이 먼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유물이 먼저 발견되어 유물인양과정에서 선체편이 인양된 점과
둘째, 점토층에 묻힌 선체부분만이 보존되어 있었고 바다에 노출된 부분은 모두 없어져버린 공통점이 있었다.
목선이 침몰하려면 천공충, 바다나무좀등 나무를 먹어치우는 바다동물에 의하여 급속한 침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침몰 후 바로 진흙 속에 묻힐 수 있는 조건이 아니면 수년 내에 선체는 흔적도 없어진다. 묻히는 정도가 깊을수록 보존상태는 좋으며, 얕게 묻혔을 경우는 해양균류의 침해를 받으나 바다동물보다는 파괴속도가 훨씬 늦다. 따라서 거북선의 침몰장소는 기록에 나와 있는 몇 개의 격전지 중 진흙층이 발달하고 조수의 흐름이 빨라 쉽게 묻힐 수 있는 지역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바닷물 속에서 나무보다는 비교적 보존성이 있는 병기, 승조원의 생활용품(토기등)과 그 부근의 진흙층을 중심으로 탐사한다면 우리 국민모두가 열망하고 있는 거북선의 모습을 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③ 거북선은 철갑선이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말은 주로 일본측 기록에 많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수군장이 된 구끼의 말로는 조선 전함은 거북선 이외에도 모두 철로 감싼 전함이 많이 있다고 했다. 이외에 많은 일본측 기록이 거북선이 철갑선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거북선이 철갑선이라고 해도 요즘 처럼 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남대문 등에서 볼 수 있듯 목조 전함에 철판을 씌운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측 기록에 거북선이 철로 장갑 되어 있다는 기록은 없다. 이충무공의 장계나 난중일기에도 칼 송곳을 꽂았다고는 되어 있으나 철로 덮은 기록은 없고, 조카분의 충무공 행장에도 나무로 뚜껑을 씌우고 칼을 꽂아 적이 뛰어 들 수 없게 했다고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 거북선이 철갑선은 아닐 것으로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위에 일본측의 기록자인 구끼는 안골포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신령님이 나타나 조선의 화살을 막아 주었기 때문이라는 등, 조선측 화살의 직경이 한자나 된다고 하는 등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부분이 많아 더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 부분은 현재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④ 그외의 논란들
거북선의 철갑선 이외에도 거북선 구조에 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선수의 용머리에서 대포를 쏘았다는 기록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조대왕때 발간된 이충무공 전서에는 용머리의 치수가 길이 133 cm, 내부 폭 93 cm로 나와 있는데 포를 설치하기에는 너무 좁다는 느낌이 든다. 충무공의 장계나 난중일기에는 용의 입으로 현자포를 치켜 쏜다고 되어 있으며 이에 의해 왜장을 사살한 전공도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모형과 같이 긴 목에 작은 머리를 가지고는 그 안에서 병사가 현자포를 쏘기에는 무리 인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충무공 전서에 거북머리(용머리)에서 유황연기를 뿜어 적을 혼미케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과연 용머리의 기능이 선수부 포탑에서 유황연기 방출용 굴뚝으로 바뀐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논란은 현재 각종 모형에 제시된 바와 같이 거북선의 용머리가 길게 위로 솟아올라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김재근교수의 '우리 배의 역사'에서는 임진란 당시 거북선의 용머리는 현재 모형 보다 크고 거북선 선수부에 밀착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 다른 논란으로는 거북선의 노역에 관련된 것이다. 최초로 거북선을 연구한 연세대학의 언더우드박사는 거북선 선체 상판에 노 구멍을 뚫고 서양식 노를 젖는 것으로 거북선 복원도를 지난 1934년 제시한 적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보는 거북선 복원 모형들이 대게 이를 많이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김재근 교수 등은 전후 일본에 파견된 사신선의 전개도 등을 증거로 거북선도 멍에 뺄목위의 상장과 선체 사이에 조선식 노를 걸어 노역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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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27
  • 저작시기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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