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2. 한중수교의 배경

3. 한중 수교의 의의 및 문제점
-한중 수교의 의의
-한중 수교의 문제점

4. 한중 수교 이후의 경제 교류
-한중 경제교류의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대만과의 단교로 인한 손실

5. 앞으로의 과제

6. 결론

본문내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제실리의 방향으로 장단기적인 정책대응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2. 대만과의 단교로 인한 손실
1992년 4월 중국은 당시 노태우 정부에 수교를 제의해 왔다. 중국의 수교제의는 대만과의 단교를 대전제로 깔고 있었다. 월간중앙(1993년 10월 호)의 글을 보면 당시 제3세계권인 아프리카의 니제르와의 국교수립을 대만에 빼앗겼던 중국은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서 그들은 대만외교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 찾기에 골몰했다. 그게 비로 ‘한국카드’였다. 사정이 그랬던지라 만일 우리가 “두 개의 중국을 인정하겠다.”고 고집했더라면 수교는 불발로 끝났을 게 뻔했다고 했다. 우리는 대만을 잃고 차관을 아꼈다.
한국과 중국의 수교로 인한 긍정적인 면은 위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한대만 단교가 초래한 부정적인 요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우리의 대 대만 수출은 89년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선 이후 91년부터 급신장세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대만에 대해 무역흑자를 남기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그해부터 였다. 1992년의 경우 우리는 대만쪽에 22억6천2백만달러의 수출을 통해 9억4천7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리적 근접성과 문화적 유사성이 강점으로 작용했고 일본을 견제해야 버틸수 있다는 대명제 또한 관계구축에 한몫을 했다.
대만과의 단교이후 대만이 우리나라에 취한 경제제재조치를 보면 자동차 수입쿼터 철회, 농산물의 바터거래 중단, 항공협정의 폐지, 한국상품에 대한 강력한 덤핑조사 등이다. 뿐만아니라 대만의 ‘국가건설 6개년계획에 한국기업의 참여불가가 명시되 있었다. 이 사업은 총 투자규모가 3천1백42억달러에 달하며, 그 중 국제입찰에 부칠 토목사업만도 10여개 8백18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이었다. 월간중앙(1993년 10월 호)에 의하면 원래 대만은 이 사업에 한국기업의 참여우대 조치를 부여해 놓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중 수교, 한대만 단교로 인하여 참여가 어렵게 되었다.
Ⅴ. 앞으로의 과제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한중 수교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떠한 점들에 유의하고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
첫째, 수교 이후에 대두된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함으로써 이익은 최대화하고 손해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경협에 신중을 기함으로써 구소련과의 경협에서 초래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강력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인치적 성격이 강한 국가로서, 자본주의적 관념이나 관행 그리고 법령정비 등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인 까닭에, 이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제반 대화와 협상 또는 상거래에 임하지 않으면 의외의 커다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둘째, 인적교류에 있어서도 유의할 점들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중국은 물가구조에 있어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달리 취급하는 이중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위해 화폐제도에서도 내국인이 인민폐를 사용하고 있는것과는 달리 외국인에게는 태환권을 사용토록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중국의 물가가 한국에 비해 저렴한 것은 사실이나 한국에서 습관화된 허장성세를 중국여행에서 표출하는 경우 본의아닌 바가지를 쓰게 되거나 중국인들과의 충돌을 야기시킴으로써 양국관계의 순탄한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국제관계를 볼 때, 한국의 대외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요인들은 모두 제거 되었다는 측면에서, 이제는 보다 주체적인 태도로 북한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등장함으로써 보다 공개리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북한의 개방화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중 양국이 기여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대만 또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형성하고 움직여 가는 현실적 실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가 외교안보 및 장기적인 교류의 관점에서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하면서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고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미국과 일본 등의 경험을 교훈 삼아 실질관계 회복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Ⅵ. 결론
지금까지 한중 수교의 배경, 의의와 그 영향을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한중 수교, 한대만 단교로 인한 득실은 정치외교적인 차원은 물론 경제에 있어서도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월간중앙(1993년 10월 호)를 보면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중국대만을 하나로 보는 또 다른 ‘하나의 중국’발상이 요구된다”고 했다.
지금 세계는 모두 과거의 이데올로기 우선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국이익 우선정책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무엇이 보다 국가와 만족의 이익에 부합되는가를 직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이를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한중 경제교류의 증진은 지리적 근접성, 문화적 공동배경, 생산자원의 부존도, 개발경험, 경제적 보완성 등 상호이익을 계속 신장시킬 수 있도록 상호 교역의 확대 균형과 경제협력의 다각화를 도모하여 가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참고문헌
소치형(1988), 중공과 동북아질서, 인간사랑.
송영우,소치형(1992). 중국의 외교정책과 외교, 지영사.
송영우,소치형,정경섭,문정구,이남구(1993), 한중관계론, 지영사.
송정은(1992), 한중 수교의 결정요인 부석, 숙명여대 석사논문.
한영춘,박창희,공기두,박명희(1993), 한중 시대의 개막과 한국의 미래,
자유평론사.
사회평론, 1992년 10월 호 (pp. 24-31).
이코노미스트, 1993년 7월 5일 자 (pp. 31-33).
월간중앙, 1993년 10월 호 (pp. 442-451).
조선일보, 1992년 8월 25일 자 (p. 2).
조선일보, 1993년 3월 16일 자 (p. 2).
중앙일보, 1992년 8월 26일 자 (p. 2).
한국경제신문, 1992년 8월 24일 자 (p. 2).
NEWSWEEK, 1993년 2월 17일 자 (pp. 22-25).
  • 가격2,3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12.27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045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